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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적이 아니라 性에 무너지는 대한민국 軍

[사설] 적이 아니라 性에 무너지는 대한민국 軍

입력 2015-01-28 17:54
업데이트 2015-01-2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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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전방 사단 예하 부대의 여단장(대령)이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지난해 9월 같은 혐의로 창군 이래 처음으로 현역 사단장이 구속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데도 유사 사태가 재발했다. 지난해 잇단 성(性) 군기 문란 사건으로 군 내부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참담하게 비쳐진다. 이러다간 우리 군이 적(敵)이 아니라 성범죄에 무너지게 되겠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터져 나올 판국이다.

이번 사태는 군 수뇌부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 엄중히 여겨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비단 청와대 파견 경력이 있는 엘리트 간부가 연루된 성범죄 혐의라서만이 아니다. 군 수사 당국이 이번 사고가 불거진 부대 B소령이 저지른 별건의 성추행 사건을 수사하다 문제의 A대령 성추행 혐의를 인지하게 됐다고 한다. A대령은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며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 부대 내에서 대령과 소령이 부대 내 숙소에서 같은 방을 쓴 여성 부사관과 그녀의 동료를 상대로 이런 작태를 벌였다니, 성 군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군내에 만연한 여군에 대한 성희롱과 성추행이 이번에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났을 개연성이다. 물론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최근 통계를 보면 기우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지난해 군인권센터가 여군 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5명 중 1명꼴로 크든 작든 성적 괴롭힘을 당해 본 적이 있다고 했다니 말이다. 특히 2010년 13건에 그쳤던 여군 성추행 피해 건수도 2013년엔 59건으로 늘어났다지 않는가.

성 군기 문란 사건이 계속 꼬리를 무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에도 원인이 있을 듯싶다. 언필칭 ‘60만 대군’이 모인 군대에서 불거지는 성범죄 건수가 그만한 인구 규모 도시에서 벌어지는 건수보다 많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성범죄로 기소된 군인들의 실형 선고율은 2009∼2011년 15.2%로, 민간 성범죄 피고인들에 대한 실형 선고율인 34.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면 문제다. 실제로 지난 3월 여군 대위를 성추행해 자살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던 육군 소령에 대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가 선고돼 논란을 불렀다. 상명하복이 당연시되는 군 조직에서 상관이 부하에게 저지르는 성범죄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경종을 울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당장엔 물리적 처벌도 강화해야겠지만, 여군 대상 성폭행 사건이 빈발하는 원인을 제대로 규명해 근본 대책을 세울 때다. 지난해 마련한 민관군 병영혁신안은 주로 ‘관심병사’ 관리에 초점을 맞춘 인상이다.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을 염두에 둔 대증 요법 수준에 그쳤다는 뜻이다. 관심병사들이 군내 사고로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는 것을 예방하는 일 못지않게 ‘관심간부’들의 성범죄 등 일탈을 미리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 여군의 구성비가 높아지고 있는 군 내부 환경의 변화 추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성 군기 사건과 간부들의 승진을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부디 양성평등이란 시대 조류에 맞춰 병영문화를 확 바꿔 나가기를 당부한다.
2015-01-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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