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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이제 깃발을 내려야 한다/신호영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이제 깃발을 내려야 한다/신호영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15-02-26 17:56
업데이트 2015-02-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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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복지’라는 깃발이 휘날린 지 3년째다. 정부는 처음에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비과세와 감면을 축소하고 다른 쓰임새를 줄이면 증세 없이도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 이 말은 하지 않는다. 경제 활성화 노력 없이 증세를 논의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증세를 해야 한다는 쪽과 복지를 축소해야 한다는 편으로 다시 나뉜다. 어떤 말을 따를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신호영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호영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증세 없는’이라는 깃발이 나부낀 후에도 여러 세금이 늘어났다. 소득세 공제 방식 변경으로 인한 소득세액 증가, 담배세액 증가,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등 굵직한 것만 해도 상당수다. 이들은 증세가 아닌가? 정부가 말하는 증세는 무슨 뜻인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제도를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세무조사를 더 강하게, 더 많이 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세금을 더 많이 걷는 것도 증세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새로운 세금을 만들거나 세율을 올리는 등 제도를 바꿔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것만을 증세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이상하기는 하지만 더 좁혀서 일반 대중이 내는 세금 말고 법인이나 재산에 대한 세금을 늘리는 것만을 증세라고 할 수도 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면 증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면 정부가 말하는 증세는 행정력을 동원해 세금을 더 걷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 듯하다. 담뱃값이 오르고 소득세 부담도 늘어나는데 ‘증세 없는’ 깃발이 아직도 날리는 것을 보면 제도 변경에 의해 세금을 보다 많이 걷는 것 모두가 정부의 증세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세 번째와 비슷한 의미로 증세라는 말을 쓴다. 다만 법인세 비과세 및 감면 축소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증세에 포함시키지 않고, 재산세는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니 정부가 말하는 증세에는 법인세율 인상 외에는 남지 않게 된다. 이제 정부가 말하는 증세의 뜻을 알 수 있다. 정부가 말하는 증세는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법인세율 인상 없는 복지’다.

이론상으로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정부에 법인세는 매력적이다. 법인은 투표를 할 수 없고 정치적인 주장도 할 수 없으며, 법인의 대주주는 수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상 최대의 세수 결손에도 법인세율을 올리려 하지 않는다. 이론상으로는 법인세율만은 그대로 두겠다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법인세율을 올리려 하지 않는 것은 법인과 대주주를 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익이라고 계산했거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 법인세율을 낮추는 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를 위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법인세율을 인상하지 않으려 한다고 믿는다. 소득세액 증가와 법인세액 감소, 담뱃값 인상을 통해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가 세금에 대해 각성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법인과 대주주를 위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계산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옳다는 신념 때문이라면 법인세율 인상은 없다는 말을 증세는 없다는 말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좁게 보아도 제도 변경에 의해 세금을 더 많이 거두면 증세다. ‘증세 없는’이라는 포장은 정부가 거짓되다는 오해와 불신만 부른다.

이제 정책이 나오면 꼼수 증세를 숨기기 위한 가장행위가 아닌지 의심부터 한다. 법인은 법인대로 온갖 다른 명목으로 세금을 거둔다고 불만이다. 세금에 대한 다툼이 사상 최고점을 찍고 있다. 일선 세무관서도 행정 비효율에 시달린다. 어떤 세금이든지 세율 인상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다. 건강보험과 공적연금 개혁을 추진해야 할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상당 부분은 ‘증세 없는’이라는 깃발이 부른 불신에서 비롯됐다. 이제 법인세율 문제를 드러내 의견을 모으고 신뢰를 다시 쌓지 않고서는 다른 과제에 다가가기도 어렵게 됐다. 빨리 법인세율 인상 여부에 대한 의견을 모아 걸림돌을 제거하고, 다른 과제로 나가야 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다. 좋은 시절이 오도록 노력도 해야 하고, 해야 할 다른 일도 해야 한다. 이제는 혼란과 불신을 가져오는 깃발을 내리고 법인세율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2015-02-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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