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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세 자매는 왜 죽음을 택했나

부천 세 자매는 왜 죽음을 택했나

이성원 기자
입력 2015-05-27 18:44
업데이트 2015-05-2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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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두 동생 직장생활 안해 세상과 담 쌓고 그들끼리 생활

우울감 공유로 끝내 동반자살…“타인과 희망 공유했더라면…”

경기 부천 세 자매 사망 사건이 결국 상대적 박탈감과 세상으로부터의 고립감 등이 우울증으로 발전해 빚어진 ‘동반 자살’로 결론 났다. 경찰은 27일 세 자매에 대한 부검 결과와 주변 인물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이들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마무리 조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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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은 함께 살던 30세 안팎의 세 자매가 어떤 과정을 거쳐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는지 경찰 프로파일러와 심리학·사회학 전문가들을 통해 분석했다. 많은 전문가는 세 자매 동반 자살의 원인을 ‘우울감의 공유’에서 찾고 있다.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여성들은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이 남성보다 강한 만큼 세 자매가 감정을 공유하면서 각자의 우울감을 증폭시켜 결국 동반 자살에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두 명이 힘든 처지에 놓여 우울감을 느끼더라도, 외부와 관계를 맺은 나머지 한 사람이 희망을 얘기했다면 동반 자살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 자매 모두 뚜렷한 직업이 없었던 점이 결정적으로 불안감을 증폭시킨 것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 결과 세 자매 가운데 셋째 김모(33)씨만 최근 직업 경험이 있었고 넷째(31)와 다섯째(29)의 직장 생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나마 셋째도 최근 직장을 잃은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셋째 딸만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월급 160만원을 받고 10여년간 재직해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박모(62)씨는 이런 상황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세 자매가 각기 다른 어린이집에서 일했고, 넷째는 현재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하고 있다”고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진표 서울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적 관계가 끊겨 외로움을 느끼면 자살에 대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과정에서 친밀한 사람들끼리 감정이 공유됐을 때 ‘혼자 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동반 자살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상대적 빈곤·사회적 고립·우울감 공유… ‘희망 사다리’ 끊다

지난 26일 경기 부천 원미구 성모병원 장례식장. 세 자매의 영정이 나란히 놓인 빈소에는 적막감만이 맴돌았다. 그들의 쓸쓸한 죽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친지 5~6명뿐. 서울신문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세 자매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지만 또래 조문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27일 오전에 있었던 발인 때도 비슷했다. 세 자매의 외삼촌은 전날 밤 다녀간 조카 친구들의 말을 덤덤하게 전했다. “자기들도 당황스럽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일을 저지를 애들이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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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세 자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기 부천의 아파트. 셋째 딸과 넷째 딸의 추락 당시 충격으로 주차장 지붕이 뚫려 있다. 다섯째 딸의 시신은 방 안에서 발견됐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세 자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기 부천의 아파트. 셋째 딸과 넷째 딸의 추락 당시 충격으로 주차장 지붕이 뚫려 있다. 다섯째 딸의 시신은 방 안에서 발견됐다.
연합뉴스


부천 세 자매 사망 사건이 자살로 결론지어진 가운데 그들의 극단적인 선택의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실직 상태이기는 했지만 기초생활보장대상자가 아니고, 거주하는 아파트도 어머니 소유의 시가 2억원대 이상의 주택으로 절대 빈곤 상태는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느꼈을 ‘상대적 빈곤감’, 무직에서 오는 ‘사회적 고립’, 세 자매 간의 친밀성에서 비롯된 ‘우울감 증폭’이 동반자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어둡게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넷째 딸(31)과 다섯째 딸(29)은 지난 10년간 이렇다 할 직장이 없었다. 여기에 셋째 딸(33)이 지난 2월 10년간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둠에 따라 불안감은 더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 자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일자리가 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오랜 기간 실업 상태를 통해 연애, 결혼을 꿈꿀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삶과 정체성, 존재감의 혼란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 빈곤이 희망 사다리를 끊어 자신들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했다는 의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들은 사회적 단절 상태까지 겪었을 확률이 높다. 세 자매는 그럴수록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친밀한 가족끼리 절망감을 공유하면서 자살까지 나아갔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생계 문제로 가족 모두 동반자살하는 사건은 많았지만 어머니가 잠자는 집에서 자매가 동반자살하는 사건은 처음”이라면서 “미취업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가족 내 커뮤니케이션의 틀이 깨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시각도 있다. 단순히 세 자매의 특수한 상황이 이번 사건의 배경이 아니라 우리나라 청년들이 겪는 취업의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로 시각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청년들은 취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일해도 저축을 할 수 없는 만큼 희망을 상실해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면서 “더군다나 노력해도 중산층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는 절망적 계층구조가 세 자매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다른 친구들이나 정부기관 등 외부적 도움과 교류가 있었다면 이들이 동반자살에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현재 환경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 때문에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모방 자살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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