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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용 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군복 벗어 보니 직업 군인 선택한 게 후회”

[정현용 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군복 벗어 보니 직업 군인 선택한 게 후회”

정현용 기자
정현용 기자
입력 2015-11-20 17:56
업데이트 2015-11-2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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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취업 어려운 제대 군인의 현실

“사단의 참모 직위를 맡으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주말 출근도 했고 자기 계발을 할 여력이 없었지요. 장기 선발에서 떨어지고 사회에 나와 일반 지원자들과 함께 취업 준비를 하면서 군생활을 한 게 후회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대다수 기업들이 전역 군인을 영업직군으로만 뽑습니다. 주요 직군에 발을 들이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일반 지원자들의 각종 자격증과 어학 수준 등 스펙이 경쟁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기 때문이죠. 전역 군인 선배인 지인도 기업에서 역량 부족을 이유로 압박을 받아 퇴사하고 택시기사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내 미래 모습이 아닌가 두려움이 듭니다”(전역자 A씨)

정부는 역대 정부 최초로 ‘명예로운 보훈’을 국정 과제로 채택했습니다. 지난달 20~26일 제대군인 주간을 맞아 거창한 행사도 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열띤 홍보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달라”는 제대군인들의 아우성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위 사연은 한 제대군인이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올린 많은 글 중 하나입니다. 연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수입이 끊겨 참담한 지경에 놓이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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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5 국방부 전역예정 장병 취업박람회에 몰린 전역자와 전역 예정자.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전역자나 전역 예정자가 많지만 10명 중 4명은 취업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지난 4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5 국방부 전역예정 장병 취업박람회에 몰린 전역자와 전역 예정자.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전역자나 전역 예정자가 많지만 10명 중 4명은 취업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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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일반 공무원과 달리 직업군인은 계급정년이 있어 의사와 무관하게 군복을 벗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중령은 10대1, 대령은 20대1의 진급 경쟁을 뚫어야 한다. 훈련소에서 격투 훈련을 하고 있는 부사관 후보생들.  육군 제공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일반 공무원과 달리 직업군인은 계급정년이 있어 의사와 무관하게 군복을 벗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중령은 10대1, 대령은 20대1의 진급 경쟁을 뚫어야 한다. 훈련소에서 격투 훈련을 하고 있는 부사관 후보생들.
육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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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원하지만 군인에게는 전역 전까지 1년의 취업 준비기간이 있을 뿐이다. 2015 국방부 전역예정 장병 취업박람회에서 기업 담당자와 면접을 하는 장병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기업은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원하지만 군인에게는 전역 전까지 1년의 취업 준비기간이 있을 뿐이다. 2015 국방부 전역예정 장병 취업박람회에서 기업 담당자와 면접을 하는 장병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재취업률 58.7%… 비정규직이 62.6%

국가보훈처 조사 결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 전역한 제대군인의 취업률은 58.7%. 5544명만이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올 상반기까지 3614명이 취업했습니다. 보훈처는 제대군인 일자리 확보를 국정 과제로 추진하기 시작한 2013년 초와 비교하면 지난해 말 기준 취업률은 6.1% 포인트 상승한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10명 가운데 4명은 여전히 취업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보훈처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구한 제대군인 3061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917명(62.6%)이 비정규직으로 분류됐다는 통계만 봐도 구직자들의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국내 임금노동자 비정규직 비율(32.4%)의 두 배입니다. 조사 대상자 평균 연소득은 2525만원으로, 2000만원이 안 되는 제대군인이 810명(26.5%)에 달했습니다. 연소득 4000만원 이상은 224명(7.3%)에 그쳤죠. 직원 수 100명 이상인 국내 기업 1만 4000여곳 가운데 제대군인을 채용한 회사는 1700여곳으로, 12%에 그쳤다고 보훈처는 지적했습니다.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일반 공무원과 달리 직업군인은 계급별 정년제도가 있습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진급하지 못하면 대위는 43세, 소령은 45세, 중령은 53세, 대령은 56세에 군복을 벗고 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상사는 53세, 원사와 준위는 55세입니다. 대부분 중도에 군복을 벗고 싶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중령 진급 경쟁률만 10대1, 대령 진급은 20대1에 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회로 나와야 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가운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복무 기간 20년을 채우지 못한 대위와 소령, 중사, 상사 등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10년 이상 장기복무 제대군인의 평균 연령은 45세이고, 부사관 출신 제대군인의 80%는 고졸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경기불황으로 일반인 재취업도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기업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제대군인은 정부 지원 없이는 사실상 취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정부 지원은 제대군인은 물론 인력 수요자인 기업의 눈높이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훈처는 기업에 ‘보훈특별채용’이라는 명목으로 제대군인 채용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20인 이상 근무하는 기업(제조업 200인 이상) 직원의 3~8%를 국가유공자, 유공자 자녀와 제대군인으로 의무 채용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비율을 채우지 않으면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하고 있지만 이 제도를 제대로 지키는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일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오히려 보훈처를 ‘갑’이라고 칭하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채용에 필요한 인력은 정보기술(IT) 전문 인력인데 반강제적으로 전문성도 없는 제대군인을 추천해 왔다”거나 “온라인 시스템이 없는지 오프라인 이력서를 잔뜩 꺼내 주며 선택해 보라고 했다”, “보훈처 담당자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고용해 지원 직종과 관련없는 자리를 줬다”고 토로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반면 보훈처 직원들은 “밤낮으로 제대군인을 채용해 달라고 기업에 읍소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합니다. 재취업과 관련해 아무런 유인책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양쪽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 지원 없으면 사실상 취업 자체가 불가능

법은 존재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훈가족이라는 것 하나로 기업에 의무고용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제도는 더욱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방법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제대군인과 기업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세제 지원이나 실질적인 인건비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오히려 올해 3월 육군 내부에서는 의무고용 과태료를 현행 5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대폭 상향하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기업과의 의식 간극을 좁히기는커녕 갈등을 부추기는 모양새입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은 제대 전 최대 1년의 직업교육 지원을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물론 제대군인지원센터, 지자체 일자리센터 등을 통해 전역 후 일자리 소개나 교육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전역해 냉혹한 현실에 맞닥뜨리기 전 미리 충분히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군인일수록 혜택받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지난해 전역 예정자와 지휘관, 인사 실무자 등 6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역 예정자의 33%, 지휘관의 30%가 전직지원제도를 잘 모른다고 밝혔습니다. 전역 예정인 중기복무자 10명 가운데 6명은 교육비 지원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오면 다시 취업 사교육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육군 부사관 정원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이후 급증해 인건비만 해마다 1000억원 이상 부족할 정도입니다. 군 조직 개편에 따라 앞으로도 부사관 정원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계급 정년에 따라 전역하는 부사관도 급증할 수밖에 없는데 취업 지원 제도는 제자리입니다. 영관급 장교의 재취업률이 50% 이상인 반면 준·부사관의 취업률은 40%에도 못 미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만큼 향후 부사관 전역 예정자에 대한 집중적인 재취업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대 군인 채용한 기업은 83%가 만족

기술직 자격 취득이나 현장 실습과 관련한 교육지원 체계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제대군인의 취업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직 부족한 수준입니다. 인력 수요가 비교적 많은 사회복지직 등에 대한 교육 지원을 강화하고, 제대군인이 선호하는 사무직 교육은 한글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단순한 사무프로그램 사용법을 알려주는 기존 방식 대신 적극적으로 기업과 연대해 현장에서 업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기업도 사회 공헌의 한 방향으로 제대군인 재취업 환경을 조성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8년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업의 제대군인 활용 실태조사’에서 제대군인 채용에 대해 조사 대상 기업의 82.5%가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특히 군 복무 결과로 리더십과 성실성, 책임감, 추진력이 돋보인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전문성을 정부와 군에서 채워 준다면 사회에 성공적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정부는 제대군인에 대한 일자리 확충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성과 보여 주기식 취업자 수나 상담자 수에만 치중한다면 제대군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고 표현하기 어려울 겁니다. 기업과 제대군인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느라 한 곳에 제대로 정착하지도 못하고 전국을 떠돌다 사회로 돌아오는 제대군인이 많습니다. 더이상 “직업군인 된 것을 후회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희망을 주시기 바랍니다.

junghy77@seoul.co.kr
2015-11-2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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