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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불여일행] ‘혼자’가 주는 힐링타임-혼밥 고수, 혼술에 도전하다

[백문이불여일행] ‘혼자’가 주는 힐링타임-혼밥 고수, 혼술에 도전하다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5-11-30 16:52
업데이트 2015-11-3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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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을 할 땐 1인용 좌석이 필요하다. 처음이라 어색하다. 기념으로 손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혼술’을 할 땐 1인용 좌석이 필요하다. 처음이라 어색하다. 기념으로 손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6년 전 지구반대편에 있는 뉴질랜드 행 비행기를 탔다. 연결고리 하나 없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혼자 가서 두 달 동안 혼자 살고 혼자 돌아왔다. ‘혼자’란 말은 그곳에서 지내는 내게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분명 외로운 시간이었는데, 괴롭지는 않았다. 아무도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가족, 친구, 일터가 있는 한국에서는 ‘혼자’인 것이 불편했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땐 익숙하고 당연했던 혼자만의 시간이 쉼에서는 유별난 행동처럼 여겨졌다. 정작 나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이상하게 바라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칭 ‘혼밥’ 고수의 첫 ‘혼술’

혼자 레스토랑에 가서 라자냐를 시키고,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자칭 ‘혼밥(혼자 밥먹기)’ 고수인 나는 이번엔 ‘혼술(혼자 술먹기)’을 해보기로 했다. 평소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다 주말 저녁 여자 혼자 술이라니. 왠지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혼술족이 빠진 혼술의 매력이 뭔지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

28일 해가 진 저녁, 서울 성북구 삼선시장 골목에 있는 작은 맥주가게 ‘SUB’를 찾았다. ‘혼술하기 좋은 곳’ 목록에 빠지지 않는 곳답게 작고 조용했다. 1인용 좌석은 혼술집에서 빠져서는 안 될 요소. 짐을 내려놓고 1인 좌석에 앉아 피자와 맥주를 주문했다.

젊은 부부 두 명이 운영하는 가게 안은 주인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과 소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여럿이 올 땐 잘 안보였을 구석구석이 더 잘 들어왔다. 주문한 예일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비싸지 않은 데도 수제맥주라 그런지 맛이 좋다. 직접 구워주는 피자는 맥주안주로 ‘딱’이다.

혼자 앉으니 조그만 종이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좋다.
혼자 앉으니 조그만 종이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좋다.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은 없지만 첫 ‘혼술’이라 그런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지나치게 편한 기분이 아무래도 어색하다. 술자리문화에 길이 든 탓일까.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데도 “맛있다”, “분위기 좋다” 말할 대상이 없다는 게 영 아쉽다. 애꿎은 마음에 휴대폰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소통을 시도했다. 해시태그로 #혼술을 누르니 게시물이 3900개다.

맥주 몇 모금 들이켰다고, 가게에 흐르는 김동률 노래에 더 몰입하게 된다. 조금 어색하고, 사람이 그리워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느낌이 꽤 좋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친 마음을 혼자 있는 이 시간이 채워준다. 또다시 북적댐이 그리워진다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1인 가구 청년 증가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혼자 살고 있는 ‘1인 가구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1인 가구는 500만을 넘어섰다.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연평균 3.5%씩 증가해 2035년에는 34.5%로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의 소득 대비 소비성향은 80.5%, 전체 가구 평균인 73.6%를 웃도는 수준이다. 소비에 있어서도 적극적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자신만의 여가생활을 하며 즐기는 ‘나홀로족’도 증가하는 추세다. 김지영(26·가명)씨는 “혼자 여행가는 것을 즐긴다. 혼자 밥도 먹고, 술도 자주 먹는데 예전에는 ‘혼자?’라는 시선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멋지다’ ‘좋겠다’란 말을 많이 듣는다. 1인 공간이 계속해서 생기는 추세라 딱히 불편한 점이 없다”고 말했다.

1인가구가 늘면서 1인용 술집도 많아지고 있다. 서울 청담동, 한남동, 서교동, 연남동에는 어렵지 않게 ‘혼술’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볼 수 있다. 와인바, 이자카야, 맥주 펍, 소주집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혼술 매니아’라는 이정선(31·가명) 씨는 “회식문화에 지쳐 언젠가 혼술을 하게 됐는데, 위로받는 기분을 받아서 혼술을 즐기게 됐다. 친구들이 다들 직장에 다니니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시끌벅적하지 않은 곳을 검색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위로받는 기분”이라고 ‘혼술’의 장점을 전했다.

2030세대들의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 잡은 ‘혼술’. 일각에서는 얕아진 인간관계를 보여주고,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다며 우려하는 시선도 있지만 직접 해보니 ‘취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기운조차 없을 때, 눈치 보지 않고 조용히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을 때,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혼술’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떨지.

백문이불여일행
백문이불여일행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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