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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불여일행] ‘북-스테이’ 책이 선물해준 휴식

[백문이불여일행] ‘북-스테이’ 책이 선물해준 휴식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5-12-07 16:18
업데이트 2015-12-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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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를 위해 찾은 헤이리마을의 모티프원. 큰 서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북스테이’를 위해 찾은 헤이리마을의 모티프원. 큰 서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준비물은 되도록 없었으면 한다. 현실의 짐도 충분히 무거우니까.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북-스테이(Bookstay)’라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책의 바다에 풍덩, 나를 비우다

북스테이는 작은 책방이 있는 민박집이다. 이름처럼 책과 함께 지내기 좋은 곳이다. 자연 속에서, 나무로 만든 책 속에서, 자연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쉴 수 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지난 금요일 파주 헤이리마을에 있는 유일한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을 찾았다.

책이 빼곡한 서재가 밖에서도 훤히 보이는 집. 잠금장치가 없는 미닫이문을 열자 2층 어딘가에서 울리던 피아노소리가 멈췄다. 이 집의 주인이자 예술마을의 촌장 이안수(58)씨가 허연 턱수염만큼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가장 먼저 안내해 주는 곳은 방이 아닌 1층 서재다. 서재에서 방까지는 10~20m밖에 되지 않지만 좀처럼 방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손님들의 손이 닿은 책과 그림, 사진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1만3000여권의 어마어마한 책들은 그 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을 든든하게 한다.

처음 온 곳이지만 단골 책방에 온 기분이다. 푸근하고 유쾌한 이안수씨를 꼭 닮았다. 잣나무로 직접 제작한 가구들과 여행지에서 공수해온 미술 작품이 손과 발이 닿는 곳에 아무렇게나 툭, 느낌 있게 놓여있다.

낯도 가리고 말재주도 없는 편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의 고민부터 연애, 여행, 꿈까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10번 넘게 다녀가는 단골도 많다고 한다. 이날도 한 여성이 좋아하는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불쑥 들렀다.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갔다. 20대 끄트머리에 혼자 왔던 이곳을 짝을 만난 30대에 다시 들렀다고 했다.

“이곳이 생각나 좋아하는 책을 쌓아뒀다가 정성스럽게 싸고, 그걸 또 멀리까지 가져다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감동이에요.” 이안수씨는 이곳에 책을 보낸 손님들의 편지를 하나하나 간직하고 보관하고 있었다. 멀리 대전에서 매달 책을 보내오는 단골손님의 편지와 ‘가장 소중한 책’이라는 방명록들, 사진과 그림들. 사람들의 흔적과 소통하며 나 또한 방명록에 흔적을 남겼다.

새카만 하늘 차가운 바람, 그리고 책장 넘기는 소리

책과 함께한 휴식 방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책과 함께한 휴식 방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밤이 늦어 책 4~5권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머문 방은 작가들이 가장 애용하는 방이라고 했다. 나무로 만든 긴 책상 앞으로 자연의 풍광이 시원하게 보인다.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없는 대신 오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새카만 하늘과 차가운 바람, 소음 없는 조용한 마을에 있으니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책을 좋아하는 손님들은 그 자리에서 7~8권을 읽는다고 한다. 이 곳에서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다. 열일곱 개의 결혼이야기가 민낯처럼 솔직하게 담겨있다. “결혼이 주는 잠깐의 화려한 놀이와 슬픔과 기나긴 초라함과 미움 등을 고루 맛보시라.” “고객 불만족 시 교환이 가능했던 연애 기간도 이미 끝났으니, 설사 구매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책임은 사용자인 당신의 몫일뿐이다.”

방안 가득 비치는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이곳을 떠나야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서재에서는 얼마든지 머물다 가도 된다”는 말에 더욱 아쉽다. 책이 있는 집에서의 하룻밤 그 이상의 만족감을 받았다.

“단순히 이색 숙박업소를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책이 있는 집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인문 공간으로서 ‘북 스테이’를 생각했습니다. 하룻밤 눈을 붙일 침대가 아니라 ‘자신의 발견과 긍정적인 변화’가 더 큰 목적인 곳입니다. 자신의 삶이 몇 도쯤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원합니다.”

10년 동안 모티프원은 70여 나라에서 총 1만여명의 유명 예술가와 여행자가 다녀갔다. 여행과 사람사귀기를 좋아하는 이안수 씨는 “여행 중의 풍경은 세월이 가면 잊혀도 사람과의 정서적 교감은 영원히 남게 됨을 실감했다. 온기 잃은 가슴을 덥힐 수 있는 곳, 무거워진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곳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창을 열면 새, 풀, 나무가 있고 방 안에는 책, 사람, 대화가 있다. 아무 계절이나 훌쩍 떠나기 좋은 곳이다. 일찍이 조선시대 세종은 문신들에게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독서 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독서휴가를 선물하는 것은 어떨지.

모티프 원(motif1). http://www.motif1.co.kr.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38-26. 이용요금 주중 12만원 주말 14만원. 전화번호 010-3228-7142, 031-949-0901

책이 있는 여행 ‘북 스테이’ 체험장소 6곳

손님과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 1만3000권 제목만 보아도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손님과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 1만3000권 제목만 보아도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올해 6월, 전국 곳곳의 책방 겸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들은 ‘북 스테이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자연과 어우러져야 하며, 책을 중심으로 지역의 삶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조건이다. 파주 ‘모티프 원’을 포함해 전국 6곳에서 ‘북 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다.

대전 ‘대동작은집’(http://blog.naver.com/casinha)은 글을 쓰는 작가를 위한 입주형 창작 공간이다. 최소 일주일은 머물러야 하며 2층에 동화책과 소설, 인문서, 만화책을 구비한 ‘똑똑 도서관’이 있다.

충북 괴산의 ‘숲 속 작은 책방’(http://blog.naver.com/supsokiz)은 백창화 작가 부부가 일군 텃밭과 정원, 피노키오 오두막책방이 있다. 책꽂이와 미니북 만들기, 저자 초청 북 콘서트 등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강원도 화천 ‘문화공간 예술텃밭’(http://www.tuida.com)은 폐교 건물을 수리해 만든 예술 공간이다. 작은 극장과 공방을 갖춰 연극 관람과 나무 물고기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부산 남포동 ‘잠 게스트하우스’(http://www.jaamguesthouse.net)에서는 독립출판브랜드 ‘스몰바치북스’와 공동으로 ‘여행 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서재 가득 주인장이 수집한 책들이 꽂혀있다.

경남 통영의 ‘봄날의 책방’(http://www.namhaebomnal.com/arthouse)은 통영에서 출판을 시작한 ‘남해의 봄날’이 기획해서 만들어낸 ‘아트하우스’다. 35년이 넘도록 사람이 살지 않던 폐가를 동네 건축가 강용상의 노력으로 헐지 않고 복원했다. 폐가를 걷기 프로그램과 저자 강연회 등이 마련되어있다.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백문이불여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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