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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22>5대 해장국(하)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22>5대 해장국(하)

김경운 기자
입력 2015-12-28 14:18
업데이트 2015-12-2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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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 해장국에는 한국인의 지혜가 담겼다. 황태로 말리기 전의 명태는 본래 흔한 어종이고, 살 맛도 퍽퍽하기 때문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가축 사료로 썼을 뿐이다. 사실 우리도 1970년대 이전엔 어선 정박장에 마구잡이로 깔린 명태를 사람들이 질겅질겅 밟고 가던 모습을 옛 사진에서 볼 수 있다. 그렇게 천대받던 명태가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고단백질의 해장 식품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런데 동해의 명태가 지금은 단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다. 제 식구가 못되게 군 탓인지, 순박한 명태가 결국 ‘가출’을 해서 몇 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명태는 서민에 친숙한 생선이어서 이름도 20여 가지나 된다. 살집이 있는 생태, 바로 얼린 동태, 딱딱하게 마르면 북어, 먹음직스럽게 말리면 황태다. 이 밖에도 백태, 망태, 먹태, 추태, 춘태 등이 있다. 북어는 동해의 차가운 해풍에 바싹 말린 것이다. 함경도 원산 지역에선 밤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뚝 떨어졌다가 낮엔 눈부신 겨울 햇살이 차가운 물기를 말렸다. 이곳의 북어가 한겨울 두서너 달 동안 밤낮으로 꽁꽁 얼었다가 눅눅해지면서 살이 노랗게 변하고 포실포실해지더니 황태라는 별칭을 얻은 것이다. 6·25전쟁 이후 남한에서 원산과 비슷한 곳이 강원도 인제·평창이었다. 해안가는 아니지만 깊은 산의 골을 끼고 있어서 더 혹한의 조건이었다.

 북어나 황태는 마르면서 생태보다 오히려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급증한다. 단백질은 4배 증가하고, 아미노산의 경우 24배 이상 많아진다. 특히 아미노산 가운데 간 해독과 면역력에 좋은 메티오닌, 타우린, 아스파라긴 등이 황태 또는 북어 해장국을 탄생시켰다. 덕장에 말리는 과정에서 북어의 단백질 구조가 깨지며 우리 몸에 좋은 체액이 나오기 때문이다.

 황태 해장국은 황태 채와 무를 들기름으로 살살 볶은 뒤 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육수를 우러나게 하면 맛있다. 콩나물은 아삭한 식감을 위해 불 끄기 직전에 넣고 새우젓, 파, 마늘 등으로 간을 한다. 각종 채소와 버섯, 두부 등을 넣어도 좋다. 또 북어 대가리와 무 등으로 미리 육수를 만들기도 한다. 뜨끈하고 진한 국물 맛에 밤사이 지친 속이 편안해진다. 해장국 외에도 황태찜, 황태전골, 황태포부침 등 황태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그런 명태가 1980년 초 동해에서 16만t씩 잡히다가 2008년 이후엔 어획량이 ‘0’이라고 한다. 정부 연구기관은 개체 증식을 위해 국내산 명태 한 마리에 50만원의 현상금까지 걸었다. 동해의 수온이 높아지고, 무분별한 남획이 명태 실종의 원인인 모양인데, 러시아산이나 일본산보다 더 짭짤하고 구수하다는 동해산 명태를 어서 다시 보는 게 바람이다.

 우린 해장국 앞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해장국에는 알코올 분해와 간 해독, 단백질 보충 등 효능뿐만 아니라 뜨끈한 국물을 들이켰을 때 입과 속도 즐겁게 할 고유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의 해장 문화를 알면 우리 것이 더욱 고맙다. 외국에선 공통적으로 꼽는 해장 식재료가 토마토와 식초다. 토마토에는 수분과 비타민 함량이 풍부하다. 음주 후 갈증에는 수분 보충이 필요하고, 비타민은 피로 회복에 좋다. 하지만 비타민에 의한 피로 회복은 당장 필요한 알코올 분해와 간 보호 이후의 문제다. 주한미군 병사들이 술 먹은 이튿날 묽게 탄 커피나 찬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은 효능보다 입 안의 시원함을 위한 것뿐이지 않을까.

미국에선 핫소스를 뿌린 피자와 햄버거 또는 꿀물로 해장을 한다. 피자와 햄버거엔 토마토가 들어간다. 소금, 후추, 식초, 브랜디 등을 섞은 해장술인 ‘프레디 오이스터’를 먹기도 한다. 영국 역시 토마토 주스와 타바스코 소스, 후추, 소금 등을 넣은 해장술인 ‘블러디 메리’를 들이킨다. 그리스는 시큼한 레몬주스에 커피 원두를 갈아 먹는다. 프랑스도 일종의 양파 수프인 ‘아루아뇽’으로 속을 달랜다. 모두 자극적인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어서 솔직히 속을 푸는 게 아니라 불편한 속을 잠시 잊기 위해 더 자극을 주는 것뿐이라고 본다. 러시아는 ‘보르쉬’라는 채소 고깃국을 먹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 뒤 잠을 잔다고 한다. 그나마 단백질 보충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 과연 해장이 될까.

 그들 주변에 우리 해장국의 식재료가 없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재료를 하찮다고 여긴 탓인지 어떤 절박함이 부족한 것인지, 그들은 몸에 좋고 맛있는 해장국을 만들지 않았다. 우리 옛 어머니들의 지혜에 오로지 감사할 뿐이다.

 

 <북어> 시인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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