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손성진 칼럼] 배신의 시절, 감정의 정치

[손성진 칼럼] 배신의 시절, 감정의 정치

손성진 기자
입력 2016-03-23 23:12
업데이트 2024-03-13 14:3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손성진 논설실장
손성진 논설실장
갓 서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 되어 그를 존경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인물이 조경태 의원이다. “노무현의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당을 옮긴다.” 조 의원이 이런 명분을 내세우며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꾸었을 때 야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은 “이게 바로 ‘배신의 정치’”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게 정치의 속성이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외침이 들리는 듯 ‘배신’이 속출하는 요즘 정치판이다. 대통령과 각을 세우다 곤욕을 치르는 유승민 의원은 일찌감치 ‘배신자’의 멍에를 썼다.

하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일 뿐이다. 배신이 배신을 낳는 셈이다. “쓴소리가 해당 행위냐”고 반발한 조 의원도 당이 먼저 배신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배신당하고 보복당했으니 나도 그러겠다는데 어찌 보면 변절자라고 심하게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뜻에서 공천에서 탈락한 비박계 인사들의 탈당 사태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컷오프는 당사자들에겐 정치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당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무소속으로 홀로 맞서겠다는데 이의를 달기는 어렵다. 그러나 조 의원처럼 당적마저 바꾸는 행동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유권자라면 수긍할 사람이 많지 않을 듯싶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진영 의원의 당적 이동도 그래서 마뜩잖다. 장관 시절 그의 소신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그도 정치적 신념이 있을 것이다. 신념이 같은 사람들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만든 게 정당이고 생각이 같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당적을 바꾸는 행위는 자신이 속한 정당만이 아니라, 믿고 따라 준 유권자를 배신하는 일이 된다. 정신세계를 단박에 바꾸기도 어려울 것이니 당을 갈아탄 자신도 정체성 혼란을 겪을 것은 뻔하다.

공천에서 탈락한 예비후보들의 반응을 보면 대체로 몇 부류로 나뉜다. 공천 결과를 깨끗이 수용하고 당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파, 당의 결정을 수용 못 하겠으니 무소속으로 나가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는 파, 아예 탈당해서 적군의 진지로 들어가 역공을 하겠다는 파다.

백의종군파는 대범하다고 칼로 무 자르듯 재단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탈당파를 대의를 저버린 비열한 정치인이라고 딱 잘라 비난할 수도 없다. 속사정이 저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보복 탓일 수도 있고 객관적으로 후보자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탈당 불사파는 대개 전자일 것이고 본인도 승복할 수밖에 없는 후자라면 미래를 도모하는 편이 나을 터이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막말 파문으로 공천에서 탈락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깨끗한 승복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후원금을 보내겠다’는 지지자들을 뿌리치고 ‘선당후사’(先黨後私)를 선언한 것이다. “당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제물이 되겠다. 당의 주인인 당원이 당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말을 유권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정치인은 다분히 감정적이다. 그들도 인간인 까닭에서다. 유권자도 다르지 않다. 이성적이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정치행위도 감정에 좌우되는 것이다(‘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요시다 도루). 맞아서가 아니라 좋아서 받아들이고, 틀려서가 아니라 싫어서 배척한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판에 난무하는 보복과 배신은 그런 감정적 정치의 산물이다. 유승민 의원의 공천 내홍이나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사퇴 논란도 감정 정치의 결과다.

세상만사가 감정에 휘둘리더라도 정치만은 이성을 지켜야 한다. 정치에서 이성이 실종되면 정의와 불의의 분간이 어려워지고 호불호(好不好)에 판단을 맡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쓴소리가 바른말이라면 받아들여야 하고 부당한 보복을 받았더라도 버럭 화를 내듯 감정적으로 행동할 것은 아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정치인은 냉정해야 하고 유권자는 그런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크게 보면 국가와 정당의 흥망이 걸린 문제다.

sonsj@seoul.co.kr
2016-03-24 31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