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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세상 속 수학] 미술 작품 위작 가려내기

[박형주 세상 속 수학] 미술 작품 위작 가려내기

입력 2016-06-14 18:12
업데이트 2016-06-1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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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요즘 미술 위작품 얘기를 부쩍 자주 접한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1991년 작가가 위작이라고 선언했지만 미술관 측은 진품이라고 믿고 있어서 분쟁 중이다. 이우환 화백의 경우는 반대여서 그가 진품이라고 믿는 작품 13개를 경찰은 모두 위작이라고 발표했다.

감정을 위해서는 먼저 전문가가 육안으로 원작자의 작품 기법이나 사용 재료의 특성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원작자의 화풍이 시기에 따라 변해 온 이력을 꿰뚫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제작 시기나 사용된 재료 등을 알아내기 위해 화학적 방식이나 엑스레이와 적외선 분석 등의 방법도 쓰인다. 제작된 시기의 안료나 도구가 쓰였는지도 꼼꼼히 점검한다. 드러난 그림 아래에 숨겨진 밑그림을 파악해 제작 시기의 상이함을 알아내기도 한다. 물론 위작자들도 허송세월하는 게 아니라서 이런 방식의 허점을 파악하고 이용한다. 점입가경이다.

모방작이 다 나쁜 것만도 아니라서 문외한에게 혼란을 더한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박물관은 모방작도 하나 보관하고 있다. 고흐 사망 2년 후에 제작된 이 모방작이 진품보다 더 고흐의 화풍을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고흐가 재정적 궁핍함으로 인해 싸구려 물감을 사용하는 바람에 진품에서 주홍색이 변색됐지만 이 모방작은 그런 문제가 없어서 오히려 고흐의 스타일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위작 가려내기의 한계에 대해 획기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건 놀랍게도 수학자였다. 2008년 미국의 방송 제작 업체인 노바는 고흐의 작품 6개를 제시하고 이 중에 숨어 있는 위작품 하나를 찾아내는 챌린지를 진행했다. 참가 팀들이 이에 도전하는 과정은 다큐로 제작돼 PBS에서 방송됐다. 노바는 이 챌린지를 위해 유명 화가인 샬로테 캐스퍼스를 초빙해 진짜와 같은 수준의 위작을 만들어 냈고, 참가 팀들은 이걸 찾아내야 했다.

당시 프린스턴대학의 수학자 잉그리드 도브시 교수가 이끄는 팀은 웨이블릿이라는 수학 이론을 무기로 이 챌린지에 참가했고 성공적으로 위작을 가려냈다. 지금은 듀크대에 재직 중인 도브시 교수는 한걸음 더 나가서 고흐 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는 모방작도 가려냈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사이 화풍의 유사성을 측정해 화풍을 시기적으로 분류하는 작업까지 해냈다.

도브시 교수의 관점은 원작자는 자기 생각의 표현에 집중하지만, 위작자는 원작과 동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선과 곡선을 그려 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주저함’이 숨어 있을 거라고 추정했다. 그녀는 이 주저함을 수학적으로 정량화해 찾아냈다. ‘모방작에 숨어 있는 주저함의 정도’를 추적하다니, 놀라운 관점의 전환 아닌가.

수학적으로는 그림을 표현하면서 윤곽과 상세 정보로 나누어 표현하는 것인데, 이 방식은 1990년대 초반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수억 개의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때 이미 사용했다. 현장에서 수거한 지문 하나를 보관 중인 수억 개와 어느 세월에 하나하나 대조한단 말인가. 큰 윤곽만 비교해 아예 다른 건 배제하면 비교 대상이 수백만 개로 준다는 아이디어로 FBI는 이 난제를 해결했다.

FBI의 지문 데이터베이스나 고흐의 위작품을 가려내는 수학은 단지 유용할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세간을 흔드는 미술품 위작 논란도 이제 수학의 힘을 빌려 보길 권한다.
2016-06-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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