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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풀꽃 편지] 시인의 자리

[나태주 풀꽃 편지] 시인의 자리

입력 2016-07-10 21:52
업데이트 2016-07-1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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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나태주 시인
인간은 이성도 있고 감성도 있는 존재다. 이성은 무엇인가를 알고 기억하고 따지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마음의 능력이다. 학교 교육이나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이고, 또 개인의 능력을 평가할 때도 이 분야를 중심으로 삼는다. 그래서 아예 인간의 능력이나 가능성의 척도를 이성적인 요소로만 국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성적인 요소보다는 감성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을 한다. 행복이나 불행도 감성적인 요소나 조건들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무지개에 불과하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시비의 마음은 이성적인 마음에서 비롯되는 마음이고 호오(好惡)의 마음은 감성적인 마음에서 출발하는 마음이다. 시비와 호오, 그 가운데 보다 강력한 마음은 호오의 마음이다. 일단 시비의 마음은 한 번으로 결판이 난다. 그러나 호오의 마음은 절대로 한 번으로 결판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뿌리가 깊고 수정이 잘 되지 않는 마음이라 하겠다. 우리 삶을 이끌고 가고 멀리까지 안내하는 마음도 바로 이 호오의 마음, 즉 감성의 마음이다.

문학 작품 가운데서도 시는 오로지 감성의 마음에 의지하는 예술품이다. 그러므로 시는 사람의 마음을 울려 준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울려 준다는 것은 감동을 말한다. 감동, 임팩트, 그것은 시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요 요건이다. 감동을 하게 되면 엔도르핀보다도 강력한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나온다고 그런다. 이 호르몬이 우리를 기쁘게 하고 만족을 느끼게 하여 끝내는 행복감에 이르도록 한다고 그런다. 그렇다면 시를 읽고 시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 인간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즐거움을 좇는 성향이 강하고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강하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포장한다 해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존재이고 이로움을 추구하는 본성을 지녔다. 왜 우리가 시를 좋아하고 시를 읽는가? 시를 읽고 좋아해서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시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시를 읽지도 않을 것이다.

역시 시도 읽어서 이로움이 있어야 하겠다. 무슨 이로움인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이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이로움, 정신의 이로움이다. 마음의 기쁨이요 만족이다. 한발 더 나간다면 힘겨운 삶에 대한 위로와 응원이다. 그래, 당신 마음을 내가 알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야. 당신은 그 힘든 마음이나 어려움에서 헤어나야만 해. 그래, 당신은 충분히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칭찬받을 자격이 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내가 그것을 보장하고 내가 그것을 응원할 거야.

만약 시가 이런 암시를 준다면 누구도 시를 읽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를 좋아하고 시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필요와 소망으로 시를 가까이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의외로 사는 일이 힘들고 지친다고 한다.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호소한다. 의기소침하고 소외감, 열등감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이 위로가 되겠고 무엇이 응원이 되겠는가.

밥이나 옷이나 그런 현실적인 것들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마음을 다치고 마음이 힘든 데에는 마음의 치료가 있어야 한다. 마음을 다스려 주고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마음을 밝게 해 주는 그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이런 때 가장 적절하게 동원돼야 할 것은 시다. 최근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들까지도 열정적으로 시를 좋아하고 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가 바로 우리들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묘약이란 것을 새삼 깨닫곤 한다. 마음의 파이팅. 그 뒤에 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수긍이 가지 않겠지만 오늘날 세상은 또다시 시의 세기다. 사람들이 그만큼 시를 읽고 싶어 하고 가까이하고 싶어한다. 왠가? 시를 통해 위로받고 싶어 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이런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다. ‘예술이 가난을 건져 주지는 못하지만 위로를 해줄 수는 있다.’ 시인의 자리, 시의 자리도 바로 그 자리다.
2016-07-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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