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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힘으로 시대가 짜맞춘 인류의 가치관

물질의 힘으로 시대가 짜맞춘 인류의 가치관

김성호 기자
입력 2016-09-30 22:46
업데이트 2016-10-0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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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가치관은 문명보다 위계·폭력으로 얻어낸 소유물이 결정”… “지배층 이념” “가치 측정 오류” 등 반박 논평도

가치관의 탄생/이언 모리스 지음/이재경 옮김/반니/480쪽/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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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뉴델리에서 남동쪽으로 800㎞ 떨어진 반다 지방에서 발견된 동굴벽화. 4만년 전 수렵채집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로, 흰색 사암 위에 그려진 사냥 장면이 생생하다.  서울신문 DB
인도 뉴델리에서 남동쪽으로 800㎞ 떨어진 반다 지방에서 발견된 동굴벽화. 4만년 전 수렵채집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로, 흰색 사암 위에 그려진 사냥 장면이 생생하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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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학살을 감행했던 히틀러의 나치 군중집회 연설 모습. 책 ‘가치관의 탄생’은 가치관을 물질의 힘에 이끌려 시대가 만들어 낸 것으로 정리해 흥미롭다. 서울신문 DB
유대인 학살을 감행했던 히틀러의 나치 군중집회 연설 모습. 책 ‘가치관의 탄생’은 가치관을 물질의 힘에 이끌려 시대가 만들어 낸 것으로 정리해 흥미롭다.
서울신문 DB
많은 문화 인류학자들은 문명의 발달을 인간 가치관의 향상과 밀접하게 연결짓는다. 정치·경제·사회의 발달은 더 높은 수준의 가치관으로 이어진다는 문명의 진화론이다. 실제로 개인과 사회가 공유하는 기본적인 생각은 보편적인 것이고 때로는 절대 불멸의 가치로까지 여겨진다. 미국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이 책은 그런 문명론적 가치관을 보기 좋게 뒤집는다. 각 시대는 결국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치관을 정할 뿐이라는 것이다. 물질의 힘이 인류의 문화와 가치관, 신념까지 한정하고 결정짓는다는 역설이 흥미롭다.

책은 진화론과 유물론을 결합해 10만년 전쯤 공평, 공정, 사랑과 증오, 신성한 것에 대한 합의 같은 형태로 처음 출현했다는 가치관을 속속들이 들춰내고 있다. 인류 문화를 수렵채집과 농경, 화석연료 시대의 3단계로 구분해 각 시대에 득세한 사회적 가치를 결정한 핵심 요인을 ‘에너지 획득 방식’으로 규정한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문화며 종교, 도덕철학이 인간 가치관에 미친 영향력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난다. 저자가 가치관의 형성 과정에서 특별히 주목한 측면은 위계와 폭력이다. 우선 원시시대인 수렵채집기를 보자. 흔히 수렵채집 사회는 모든 물자를 공동 소유하는 ‘원시 공산 체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수렵채집기의 사람들은 소유와 소유물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사람이 만든 물건 하나하나에는 개인 소유자가 있고, 그 사람이 해당 물건의 사용과 용도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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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해 농사를 짓고 살기 시작한 농경기의 가부장적 가치관도 색다르게 해석된다. 농업혁명 이후 여성에 대한 남성 주도권이 강화된 건 남성 농부가 남성 사냥꾼보다 횡포해서가 아니라 가부장제가 노동 조직화에 가장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눈에 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끝없이 경쟁하는 세계가 성공 요소로 드러나자 남녀 공히 가부장적 가치를 공정한 가치로 수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딱 잘라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종류의 체제로 가동되고 다른 종류의 가치관이 득세했던 사회의 사례가 역사학과 인류학 기록에 하나도 없을 이유가 없다.”

화석연료 시대의 특징을 수직적 위계와 수평적 위계 사이의 줄타기로 보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지난 200년 동안 이런 화석연료 가치관은 부의 불평등을 줄이는, 하지만 너무 줄이지는 않는 정부를 옹호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대목이 도드라진다. 특히 자본주의를 놓곤 이렇게 설명한다. “현실적인 사람들이 에너지가 날로 늘어나는 세상에서 자본주의가 일을 도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았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일했다.” 갈등과 타협이 반복되는 가운데 문화적 진화의 경쟁논리가 작동해 덜 효과적인 방법들을 멸종시켜 나갔다는 저자는 21세기에도 이 과정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 그리고 문화적 진화가 결국은 최선의(또는 가장 덜 나쁜) 결과를 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저명한 학자와 작가의 반박을 논평 형태로 실어 형평성을 살린 점도 책의 색다른 특징이다. 영국 엑서터대 리처드 시퍼드 교수는 저자의 주장에서 가치관과 문화 유형의 다양성이 축소됐다고 꼬집는다. 역사의 진전에 대한 견해가 지배층 이념에 가깝고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중심 이념을 지나치게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전 예일대 석좌교수 조너선 스펜스는 저자의 데이터가 생생한 현실감을 전달하는 데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인 크리스틴 코스가드는 사회에 실제로 퍼져 있는 가치와 사람들이 마땅히 보유해야 하는 참된 가치에는 차이가 있다며 저자의 도덕가치 측정 방식을 문제 삼는다.

그런 논박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가 화석연료 경제의 발전 한계수준을 돌파하게 될지, 또 돌파한다면 어떻게 할지’ 예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지난 2000년 동안 최소 다섯 개 사회가 농경 경제의 상한선을 강하게 압박했고 네 개 사회가 돌파에 실패했다. 실험은 계속 이어졌고 마침내 18세기 후반 북유럽이 화석연료 경제를 촉발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촌 시대의 우리에게는 오직 한 번의 전 지구적 실험만이 허용된다. 실패는 곧 모두의 재앙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6-10-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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