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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병 아닌데… 공황장애, 편견이 더 아프다

연예인병 아닌데… 공황장애, 편견이 더 아프다

입력 2016-10-23 23:06
업데이트 2016-10-2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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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11만명… ‘마음의 병’ 급증

4050이 절반… 스트레스가 원인
공포·두려움에 신체 통증 동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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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에 다녀온 기록이 드러나면 회사에서 소위 ‘미친놈’ 취급을 하죠. 직장을 8번이나 옮겨야 했습니다. 상담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고요. 공황장애는 돈 없으면 치료도 못 합니다.”

사회복지사 정민제(46)씨는 28년째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극심한 불안, 죽을 것 같은 공포, 미칠 것 같은 두려움 등에 빠지는 정신 질환이 공황장애다. 주로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는데 때론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심장박동 수가 급격히 증가하거나 식은땀이나 떨림 등의 신체 증상도 동반한다.

지난 19일 정씨를 그가 일하는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만났다. 그는 공황장애에 대해 공포 및 두려움 등 증상뿐 아니라 사회적 편견, 막대한 치료비와도 싸워야 하는 질환이라고 했다.

정씨에게 공황장애가 닥친 건 고교 2학년이던 1988년이었다. “슈퍼마켓에 가다가 갑자기 길바닥에 쓰러졌어요. 벼락을 맞은 줄 알았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습니다. 땀이 줄줄 나고 온몸이 떨려서 일어나지도 못했어요.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어렵게 대학까지 마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공황장애는 그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공황으로 출근을 하지 못할 때마다 ‘정신의학과’ 진단서를 회사에 내야 했고,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동료들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정신병으로 치료를 받으면 사회생활은 끝나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동료 복지사로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듣기도 했죠. 그때마다 직장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배우 이병헌, 코미디언 정형돈, 방송인 김구라씨 등이 투병을 고백해 소위 ‘연예인병’으로 불리던 공황장애가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공황장애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 수는 11만 1109명에 이른다. 4년 전인 2011년 6만 4685명보다 무려 71.8%가 늘었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그만큼 사회적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파악된 공황장애 환자를 연령대별로 보면 40대가 3만 194명(27.2%)으로 가장 많았고 50대(2만 5861명·23.3%)와 30대(2만 1162명·19.0%)가 뒤를 이었다. 40~50대가 전체의 절반(50.5%)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년의 마음병’으로 일컬을 만도 하다. 전문가들은 일, 승진, 결혼, 자식 문제 등으로 생기는 스트레스가 공황장애의 발병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황장애 환자들은 극심한 공포로 나타나는 증상과 사회적 편견뿐 아니라 높은 진료비에도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기준 없는 공황장애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적정 수가를 정하는 한편 관련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황장애는 약물로 증상을 완화시킨 뒤 인지행동치료로 치료한다. 인지행동치료란 인지치료와 행동치료를 뜻한다. 우선 인지치료로 공황장애가 죽는 병이 아니라는 점을 환자가 깨닫게 돕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도 실제 심장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려 주는 식이다. 행동치료는 환자가 두려워하는 특정한 행동을 반복해 두려움을 완화하는 것이다.

약물치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급여 항목에 포함되지만 인지행동치료는 진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공황장애 환자 김모(40)씨는 “200만원을 내고 일주일에 두 번씩, 총 12번의 인지행동치료를 받았는데 분명 효과가 있었다”며 “하지만 워낙 치료비가 비싸니 원하는 만큼 치료를 받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양종철 전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가 공황장애의 주요한 원인이기 때문에 앞으로 환자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는 적정 수가를 정하고 인지행동치료가 급여 항목에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수가가 너무 낮으면 의사들이 인지행동치료를 하지 않으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영희 메타연구소 원장은 “잠재적인 공황장애 환자가 적어도 200만명은 될 것으로 추산되지만 환자 수에 비해 전문 치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인지행동치료가 의대 커리큘럼에 포함돼 있지 않은 점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2016-10-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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