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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혼밥, 그 쓸쓸함에 대하여

[포토 다큐] 혼밥, 그 쓸쓸함에 대하여

정연호 기자
정연호 기자
입력 2017-02-12 23:08
업데이트 2017-02-13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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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밥 한번 먹자.”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주 주고받는 인사 중 하나다. 대부분의 경우가 인사치레로 던지는 의미 없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웬만한 다른 인사보다 정겹게 들린다. 밥은 인간관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밥을 함께 먹는 일의 의미는 크다.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라고 부른다. 식구는 어떤 조직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의 컵밥.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의 컵밥.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혈연관계로 이뤄진 가족(家族)보다 법적으로는 먼 관계지만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이 바로 밥을 함께 먹는 식구다. 하지만 혼밥(혼자 먹는 밥)이 식문화의 한 유형으로 자리잡으면서 식구라고 부를 만한 관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15년 기준 520만명으로 전체 가구의 27.2%를 차지한다. 이는 2010년 427만명과 비교해 25.6% 증가한 것이다. 나홀로족의 비율이 4인 가구를 넘어 가장 많은 주거 유형이 됐다. 혼밥이 유행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된 것이다.
GS리테일 식품연구소에서 개발한 신메뉴와 현재 판매되고 있는 편의점 도시락.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GS리테일 식품연구소에서 개발한 신메뉴와 현재 판매되고 있는 편의점 도시락.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서울 강남의 GS25 편의점에서 직장인 정희철씨가 점심에 먹을 삼각김밥을 고르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서울 강남의 GS25 편의점에서 직장인 정희철씨가 점심에 먹을 삼각김밥을 고르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혼자 점심을 먹는다는 직장인 박지훈(39)씨는 “혼자 식사를 할 때는 메뉴 선정이 자유롭다. 혼자 먹다 보니 식사 속도, 식사 태도, 식사 예절에서도 자유로워 한결 편하다”며 혼밥의 장점을 설명했다. 대부분의 혼밥족이 말한 혼밥을 즐기는 이유다. 이런 간편함 때문인지 국내 빅3 편의점 중 하나인 GS25 편의점의 지난해 도시락 매출은 예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혼자 간편하게 데워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도 최근 들어 매출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혼밥족을 공략하기 위한 상품과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식당에서 혼자 한 테이블을 차지한다며 눈총을 받던 1인 손님이 이제 프리미엄 서비스까지 받는 시대가 됐다.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에서 공무원 준비생 이종윤씨가 3000원짜리 컵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에서 공무원 준비생 이종윤씨가 3000원짜리 컵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서울 광화문의 한 회사 구내식당에서 퀵서비스 기사 이모씨가 콜신호가 오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혼자서 급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서울 광화문의 한 회사 구내식당에서 퀵서비스 기사 이모씨가 콜신호가 오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혼자서 급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에서 노량진 학원가에서 나온 학원생들이 컵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에서 노량진 학원가에서 나온 학원생들이 컵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반면 자신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혼밥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실업률 상승, 비혼과 이혼, 독거노인의 증가가 1인 가구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만큼 혼밥을 하나의 유행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설 연휴 마지막날 서울 노량진 학원가 컵밥거리에서 만난 3년차 공무원 준비생 이종윤(28)씨는 3000원짜리 컵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이씨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혼자 밥을 먹었다. 이제는 조금 나아졌지만 처음엔 어색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용적인 문제 그리고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에 혼자 밥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혼밥을 하는 이유를 밝혔다. 퀵서비스 기사 이모(55)씨는 주로 배달 장소의 구내식당이나 인근 편의점에서 연신 콜신호가 뜨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홀로 식사를 한다. 이씨는 “배달 시간에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그럴 여유도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 중구 중림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정정자(80) 할머니가 모닥불 위에서 손을 녹이며 빵 한 조각으로 점심 식사를 대신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서울 중구 중림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정정자(80) 할머니가 모닥불 위에서 손을 녹이며 빵 한 조각으로 점심 식사를 대신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그릇 기(器)라는 한자를 들여다보면
개고기 삶아 그릇에 담아 놓고
한껏 뜯어먹는 행복한 식구(食口)들이 있다
작은 입이 둘이고 크게 벌린 입이 둘이다
그중 큰 입 둘 사라지자 울 곡(哭)이다

이정록 시인이 쓴 ‘식구’의 1연이다. 함께 밥을 먹던 식구가 없으니 곡소리가 난다는 내용이다. 입은 닫아 버리고, 시선은 휴대전화에 쏟고 있는 당신의 함밥(함께 먹는 밥)이 그 누군가에겐 그토록 바라던 정겨운 식사일 수도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2017-02-1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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