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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칼럼] 문체부, 위기를 정체성 확립 기회로

[서동철 칼럼] 문체부, 위기를 정체성 확립 기회로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7-02-15 22:38
업데이트 2017-02-1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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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논설위원
2014년 어느 날 아침 신문에 서울대와 관련한 기사가 하나 실렸다. 온갖 잡음을 양산하던 성악과의 학과장에 국악과 교수가 임명됐다는 소식이었다. 언론 매체들은 ‘굴욕’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하지만 잠깐의 실험이었음에도 가야금 명인(名人)인 국악인 학과장의 존재는 분명히 서양 클래식 음악 일변도였을 성악과 학생들의 시야를 넓혀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건’이 된 것은 우리 문화와 서양 문화를 가르고, 옛 문화와 요즘 문화를 가르는 고정관념 아니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굴욕’이라는 표현에는 한국 문화를 가볍게 보는 서양 문화 우월주의의 그늘마저 짙다. 정부 조직부터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니 국민이 편견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989년 12월 출범 이후 기능의 이합집산이 적지 않았다. 부처의 이름처럼 본분인 문화 정책 기능을 수행하는 것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체육·관광 정책에 국정 홍보, 디지털 콘텐츠 정책 기능까지 들락날락한 것이 사실이다. 정부 조직을 꾸리다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정부’를 미덕으로 여기던 시대에는 더욱 불가피했을 것으로 이해한다.

문체부는 진심이든, 아니든 그동안 ‘시너지 효과’를 이야기했다. 문화 정책을 관광 및 체육 정책과 함께 수행하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예 문체부와 보건복지부를 합치면 상승 작용은 훨씬 더 크다. 문체부와 교육부는 또 어떤가. 조만간 간판을 내릴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미래창조과학부와의 통합도 이론적으로는 찰떡 궁합일 것이다.

문체부는 지금 창설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조만간 대통령 선거가 있을 것이고, 누가 당선되든 곧바로 정부 조직 개편에 착수할 것이다. 벌써 문체부는 ‘징벌적 개편’ 대상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기능의 분산이라면 모를까 문화 정책 기능을 수행하는 부처의 폐지는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오히려 혼란스럽던 문체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문화’와 ‘현재의 문화’, 그리고 ‘미래의 문화’의 통합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문화재청이 더이상 외청(外廳)으로 독립적인 정책 기능을 수행할 이유가 없다. 일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체부는 서양에서 비롯된 문화와 미래지향적 문화를 맡고, 문화재청은 한국 문화와 옛 문화를 다루고 있다. 이런 정부 차원의 편 가르기가 ‘성악과 학과장의 국악인 임명’을 어색하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미래지향적 문화를 포용할 수 없는 문화재청의 한계는 명확하다. 예를 들어 불교미술에서 양식(樣式)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성된 겉모습을 말하지만, 우리에겐 고구려, 백제, 신라 양식이 있고, 통일신라, 고려, 조선 양식이 있을 뿐 ‘21세기 양식’이란 없다. 요즘도 수많은 절이 지어지고, 법당에는 수많은 불상이 모셔지지만 그저 과거의 모방일 뿐이다. 이 시대 양식이 없다는 것은 미래에 남겨 줄 의미 있는 불교미술이 없다는 뜻이다.

전북 남원 실상사는 철조여래좌상을 모신 약사전에 최근 후불탱(後佛幀)을 새로 조성했다. 부처는 물론 화개장터, 운조루, 서천리 장승, 산천재 같은 주변 모습도 담았다. 그림 한 장으로 새로운 양식을 말할 수는 없지만 돌파구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옛것을 모방하면 지원할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으면 지원할 근거가 없다. 전통문화의 미래지향적 발전이 구조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해서 송구하지만, 프랑스 문화부의 조직도를 보면 그들이 문화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이유의 일단을 알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문화 정책 기능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에서는 최근 가장 수준 높은 인재들이 문체부를 대거 지원하고 있다. 우리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미래로 이끌고자 하는 포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꿈을 뒷받침하면 당연히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
2017-02-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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