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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에세이] 국제행사 성공하려면/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수요 에세이] 국제행사 성공하려면/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입력 2017-04-04 22:46
업데이트 2017-04-0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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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올해도 9월 아셈(ASEM) 경제장관회의를 비롯해서 정부 주도 아래 여러 국제회의가 열린다. 우리나라가 소위 마이스(MICE) 산업 육성을 국가발전 전략으로 내세우면서 국제회의를 비롯한 행사가 많아졌다. 자치단체에서도 국제행사 유치에 목을 매는 형국이다.

주최하는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행사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행사가 열리는 본연의 목적도 달성하면서 가급적 많은 참석자가 와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길 바란다. 그러나 행사를 담당하는 실무진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죽하면 행사는 잘해야 본전이란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필자도 행사와 관련해 이런저런 추억이 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 고참 과장이던 시절인 2005년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에너지장관회의와 서울에서 열린 제8차 세계화상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APEC 에너지장관회의의 배경은 우리나라가 APEC 정상회의를 그해 12월 부산에서 열리로 한 데 있다. 원래 개최국은 정상회의에 앞서 관련 장관회의를 열어 의제를 정하고 정상선언문에 들어갈 내용을 정리한다. 당시 에너지장관회의는 공식적으로 개최키로 한 회의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무렵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전 세계 에너지의 60%를 쓰며 수입에 의존하는 아태지역의 에너지안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우리는 긴급장관회의를 열기로 하고 회원국의 동의를 얻었다. 회의는 유치했지만 그때까지 대규모의 다자 간 국제회의를 한번도 열어 본 경험이 없었던 실무진은 고민이 매우 컸다. 의제를 선정하고 회원국에 초청장을 발송했다. 그러나 무언가 좀더 필요했다. ‘스타’가 필요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을 초청하기로 하고 섭외에 들어갔다. 다행히 참석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행사 기획사를 선정하고 준비기획단을 꾸렸다. 경주에서 사흘 회의를 개최하는 동안 우리는 본회의 및 양자회의 진행, 의전, 언론 대응 준비 등으로 정신없이 바빴다.

사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행사를 전문적으로 준비하는 민간 기획사의 역량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것을 공무원들이 열정으로 메워야 했다. 자정이 지나면서 행사 기획사 직원들이 떠난 자리를 우리 젊은 사무관들이 채웠다. 공식행사 끝 무렵 장관과 회원국 수석대표와의 마무리 조찬모임에서 필리핀 대표가 한 말씀 했다. “내가 APEC 행사를 다녀 보았지만 이런 성공적인 행사는 별로 보지 못했다.” 우리는 행사 성공을 직감했다.

세계화상대회는 이렇다. 자기들끼리 동업하고 비즈니스를 공유하기 위해 각국의 화교들이 돌아가며 회의를 개최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화교들이 많았지만 20세기 들어 정치·경제적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거나 귀화하고 고작 2만명 정도가 식당 주인 또는 한의사로서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 경제는 중국을 비롯해서 화교세가 강한 동남아 시장을 뚫고, 화교자본과 협력해서 선진시장에도 진출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나라 화교들을 도와 행사를 유치했지만 국내 화상 대표자들이 국제행사를 개최하기에는 역량이 너무 약했다.

이에 경제계가 십시일반해 행사비를 대고 코트라가 행사를 지원했다. 드디어 서울 코엑스에서 대통령이 참석하는 개막식이 결정됐다. 그런데 가장 큰 고민 한 가지. 오전 10시에 개막식이 열리려면 9시 30분까지는 3000여명의 세계 각국 화상 대표자들이 행사장에 도착해 있어야 했다. 그런데 30여개국 대표단은 서울시내뿐 아니라 경기 일원의 호텔에 분산되어 투숙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들을 제시간에 입장시키지?” 그들의 ‘의지’만 믿고 있기에는 너무 불안했다. 결국 산업부 공무원들과 코트라 등 관련 단체 직원들을 총동원했다. 화상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 함께 투숙시킨 뒤 행사 당일 데려오게 한 것이다. 개막식은 다소 어수선하고 진행도 그리 매끄럽지 못했지만 참석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돌아가는 길에 대통령께서 장관에게 한마디 하셨다. “행사가 아주 잘되었습니다.” 그간의 고생이 스르르 녹아 없어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행사 성공에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참석자들의 관심을 끄는 매력적인 의제, 스타성을 가진 주빈, 준비 실무진의 팀워크. 그리고 주빈의 칭찬이다.
2017-04-0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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