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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앵두가 있던 자리/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앵두가 있던 자리/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7-07-30 23:08
업데이트 2017-07-3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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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초입의 귀퉁이가 자꾸 돌아 뵌다. 한 달 전쯤 젊은 엄마와 일곱 살 아들이 집 마당에서 따왔다는 앵두를 팔았다. 함지박 옆에 쪼그려 앉았던 아이는 심심해지면 엄마 어깨를 짚고 지남철처럼 맴을 돌았다. 느리게 지나는 시간, 세상 재촉할 것 없는 풍경. 아이의 궤도를 도는 여유로움이 그저 정다워 저쪽 나무 아래서 나는 앵두 한 봉지를 느리게 느리게 다 먹었다.

어릴 적 옆집 앵두나무는 가지를 주체하지 못해 우리 집 담벼락으로 쏟아 내렸다. 천지의 풋열매들은 다 푸른데, 어째서 앵두알은 말갛게 희던지. 밥숟갈만 놓으면 달려가서 더디 익는 앵두알에 발을 굴렀다. 빽빽한 가지 틈새로 아찔하게 쏟아지던 볕과 하늘. 그 아늑함을 뭉칫돈을 주면 살 수 있을까.

자연에 단련된 기억은 지치거나 낡지 않는다. 야무지게 익은 앵두를 보면 여름 이야기들이 주문이 걸려 봇물 터진다. 천근만근의 삶을 가뿐히 어깨에 짊어매주는, 그리움은 거인처럼.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영어도 구구셈도 모르지만, 앵두 그늘에서 푸른 꿈을 배부르게 꾸고 있을 녀석. 다시 만나면 눈 한번 오래 맞춰 보고 싶어서.
2017-07-3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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