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이야기] ‘평온하게’ 13년간 형주 점령한 유비…취득시효 주장할 수 있나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이야기] ‘평온하게’ 13년간 형주 점령한 유비…취득시효 주장할 수 있나

입력 2017-09-21 17:34
업데이트 2017-09-21 21:2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26>취득시효

209년. 적벽에서 승리한 주유는 형주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유비도 주유에게 형주를 먼저 공격할 기회를 양보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유비는 주유가 조인과 혈투를 벌이는 사이 남성을 가로챈다. 게다가 조인의 인장을 이용해 형주와 양양까지 점령한다. 손권의 명을 받은 노숙은 유비를 찾아가 형주를 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유기가 세상을 뜨면 반환하겠다는 약속만 받고 물러난다. 유비는 이후에도 형주를 반환하지 않고 촉을 점령하면 주겠다고 계속 둘러댄다. 221년. 드디어 유비가 촉을 점령하자 노숙은 다시 형주의 반환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반환을 거절하는데….

※ 원저 : 요코야마 미쓰테루

※ 참고 : 만화 삼국지 30,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역자 이길진
일러스트 최선아 민화작가
일러스트 최선아 민화작가
유비는 겉으로는 주유에게 형주를 먼저 공격할 기회를 준다고 말하고, 뒤로는 다른 일을 벌인다. 주유가 전투를 벌이는 틈을 타 형주를 채간 것이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반환 요구를 기약도, 가망도 없는 약속으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그 기간이 무려 13년.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3년이나 남는 시간이다. 그 사이 유비는 형주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고 형주를 안정시킨다. 마침내 유비는 유기가 사망하자 공식적으로 형주를 자신이 지배하는 땅으로 접수한다.

이처럼 오랜 기간 형주를 다스린 유비가 지배자가 되는 것은 형주의 백성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백성들도 사실상의 지배자는 유비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유비의 형주 점유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방법은 없을까.

●폭력행위 등 없어야 ‘평온한 점유’

토지나 건물과 같은 부동산을 오래 점유하고 있다 보면 소유자가 아닌데도 마치 소유자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형주를 점령한 유비의 경우가 그렇다. 백성들도 형주의 실제 지배자가 유비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민법도 유비처럼 부동산의 오랜 점유를 통해 사실상 소유자인 듯한 외관을 가진 사람을 보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바로 시효취득 제도가 그것이다.

민법 제245조 제1항에 따르면,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平穩), 공연(公然)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사람은 등기를 하면서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2항에는 또 ‘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한 사람이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선의(善意)이며 과실 없이 점유한 때에도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돼 있다. 전자를 점유취득시효(占有取得時效), 후자를 등기부취득시효(登記簿取得時效)라고 한다.

유비가 주장할 수 있는 취득시효는 어느 것일까. 일단 기간 면에서 보면 유비는 형주를 13년간 점령했기 때문에 20년이라는 점유취득시효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기간이 10년인 등기부취득시효를 주장할 수는 있을까. 등기부취득시효는 점유취득시효보다 기간이 짧은 반면 그 요건이 더욱 엄격하다. ‘평온’과 ‘공연’ 이외에 선의와 무과실(無過失)이라는 요건이 추가로 필요하다.

요건을 하나씩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유비는 형주를 소유할 의사를 갖고 점령했을까 하는 문제를 따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유의 의사로 점유했는지 여부는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처음에 어떻게 해서 점유하게 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토지를 사거나 부모님으로부터 증여를 받았다고 치자. 이 경우에는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돈을 주고 사거나 부모님이 물려준 것이므로 당연히 소유의 의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농사를 짓기 위해 토지를 빌리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부터 빌린다는 것이 명백하므로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다고 볼 수 없다. 유비는 주유와 조인이 싸우고 있는 틈에 형주를 점령했다. 유비가 적벽에서 손권과 연합하긴 했지만 분명히 다른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 전쟁에서 이겨 다른 나라의 땅을 점령하는 것은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노숙의 기대처럼 손권에게 주기 위해서 형주를 점령한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유비의 형주 점유는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유비의 점유가 평온한 점유였는지를 보자. 평온한 점유란 법률상 용인될 수 없는 폭력행위 등을 사용하지 않은 점유를 말한다. 또 공연한 점유는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공공연하게 내보이면서 하는 점유를 말한다. 유비는 형주를 점령하면서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 아니다. 주유와 조인이 싸우고 있는 틈에 조인의 인장을 이용해 형주에 들어갔다. 게다가 그전부터 유표가 유비에게 형주를 넘겨줄 의사를 표시하고 있기도 했다. 또 형주의 점령자가 유비라는 사실은 손권도, 조조도 인정하고 있다. 군사적 수단을 사용한 점령이어서 이론의 여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비 입장에서는 평온, 공연한 점유라고 주장할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비의 점유에는 과실이 없을까. 점유에 있어서의 과실이란 자신이 점유할 권한이 있다고 믿는 데에 과실이 없다는 의미다. 즉 유비가 형주를 점령해도 된다고 믿고 점유한 것에 과실이 없다는 의미다.

유비에게 결정적인 또 하나의 무기가 있다.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은 소유의 의사로 선의, 평온 및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제197조 제1항)되기 때문이다. 즉, 유비의 점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소유의 의사가 아니라는 것, 선의가 아니라는 것, 평온이 아니라는 것, 공연한 점유가 아니라는 것을 최소한 하나라도 입증해야 한다. 13년간의 형주 점령은 여러모로 유비에게 유리한 것이다.

●유비, 형주에 깃발 세워 점령 고시

문제는 유비가 형주 땅이 자기의 것이라고 등기를 했는지 여부다. 등기는 부동산의 소유자가 누구인지를 알리는 ‘공시’(公示) 방법이다. 시계나 휴대전화와 같은 동산(動産)은 그 물건을 점유하고 있는 자체로 소유자로 추정한다. 점유 그 자체가 공시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의 경우에는 누가 점유하고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소유자가 누구인지도 아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부동산의 경우에는 등기(登記)라는 특별한 공시방법을 두고 있다. 등기부에 소유자로 등기를 함으로써 소유권을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

유비가 활약하던 시기에는 당연히 등기제도가 없었다. 그렇다면 유비는 등기부취득시효를 주장할 수 없을까. 유비를 위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유비는 출정을 하면서 유(劉) 혹은 유비(劉備)라고 쓴 깃발을 병사들에게 들게 한다. 또 점령지마다 같은 깃발을 세운다. 그 땅이 유비의 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 깃발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유비가 점령한 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공시방법으로 이보다 좋은 게 있을까 싶다. 이 정도면 유비로서는 최고의 공시방법을 이행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으로 유비가 등기부취득시효를 주장할 마지막 관문을 넘어선 것 아닐까.

박하영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부장검사)
2017-09-22 16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