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장 김창수’서 백범 김구 청년 시절 열연한 배우 조진웅

영화는 을미사변(명성황후시해사건) 이듬해인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한 조선 청년이 일본도를 휘두르는 일본인을 격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당당히 자신이 사는 곳과 이름을 밝히고 떠난 청년은 결국 체포되어 법정에 선다. 당당하게 국모의 원수를 갚았을 뿐이라며 강변하지만 사형 선고를 받고 인천 감옥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청년의 이름은 김창수, 훗날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 되는 백범 김구가 그다.
조진웅은 ‘대장 김창수’ 덕택에 서울에서도 마음을 의지할 공간이 생겼다며 웃었다. 효창공원에 있는 김구의 묘소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찾아가게 되더라고요. 살아가며 많은 시련이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찾아가 기운을 받아보려고요. 앞으로 힘들면 찾아와 귀찮게 할지 모르지만 잘 받아주십사 말씀드렸죠.”<br>키위컴퍼니 제공
●“몇 번 고사했는데 시나리오가 돌아오더라”

19일 ‘대장 김창수’(감독 이원태)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조진웅(41)은 “야구로 치면 직구 같은 영화”라고 설명했다. 오로지 흥행만을 염두에 두고 부리는 잔재주 없이 담백하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요즘 범죄 액션물 ‘독전’을 찍느라 체중을 많이 줄인 탓에 핼쑥해진 얼굴에서 유독 눈빛이 반짝거렸다. 지난겨울을 몽땅 바친 ‘대장 김창수’에서 그는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흔히 역사적 위인을 연기할 때 힘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절제된 감정처리(사형 집행을 앞두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장면은 압권이다)로 영화의 호소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처음부터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던 것은 아니다. 부담감에 몇 번이나 고사한 끝에 받아들이게 됐다. “제 성정으로서는 범접하지 못할 위인이라 그분의 발자취를 백 분의 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지, 겉치레로 연기하고 물러날 수는 없었기에 고민이 많았죠. 거듭 시나리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결국은 내 차례인가보다 하는 생각에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암살’ 이후 다시는 독립운동가 역할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영화에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해서 하는 것이다’라는 대사가 나오는 데 그게 딱 맞는 말”이라며 웃었다.

●“위인 연기, 그 사이즈에 몸 맞춰 넣어야”

물론 그가 실존 인물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은 아니다. ‘퍼펙트게임’에서는 야구선수 김용철을, ‘명량’에서는 왜장 와키자카를 연기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위인 중의 위인 백범 김구를 연기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다가왔다.

“실존 인물, 특히 지금 우리 세대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는 역사적 위인을 연기한다는 건 아무래도 달라요. 보통 캐릭터라면 입기가 불편할 때 포기하거나 바꾸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죠. 그런데 위인은 그게 안 돼요. 오로지 그 규격화된 사이즈에 맞춰서 몸을 집어넣어야 하거든요. 자칫 하면 왜곡 논란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위인을 연기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영화 ‘대장 김창수’
●미리 알려 주고 던진 직구 같은 영화

김창수는 동학 운동에 투신, 전투에 참여했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기개가 있는 인물이었으나 처음부터 위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진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 김창수는 다른 조선인 죄수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강변해요. 자신은 국모를 시해한 짐승 한 마리를 죽였을 뿐이라고 하죠. 하지만 그렇게 거리를 뒀던 사람들의 손을 잡아보고 그들의 평범하지만 하나하나 소중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변해가죠. 그래서 영화는 어찌 보면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평범하고 미숙한 청년이었던 김창수가 홀로 김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주변에 조선인 죄수들이 있었기에 김구가 될 수 있었죠.”
영화 ‘대장 김창수’
‘대장 김창수’는 상당히 건전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다분하다. 영화라기보다는 재연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은 대목도 있다. 바꿔 말하면 흥행 요소들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영화 베테랑들이 모였는데 왜 여러 가지 작전을 구사해 보고 싶지 않았겠어요. 영화적으로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어디 하나 (상업적 성공을 위해) 바꿀 수는 없었어요. 야구로 치면 투수가 상대 타자에게 미리 알려주고 직구를 던진 셈이에요. 변화구를 던지거나 타자를 한 번 거를 타이밍도 없는 작품이죠. 당연히 두들겨 맞아 실점이 나겠죠. 하지만 마음먹었던 부분을 모두 짚으며 완주했으니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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