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이혼·동물이야기를 통해 폭력을 말하다

이혼·동물이야기를 통해 폭력을 말하다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7-10-27 17:36
업데이트 2017-10-27 17:4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당신의 신·나는 염소가 처음이야/김숨 지음/문학동네/200쪽·264쪽/1만2000원·1만3000원
이미지 확대
이미지 확대
주제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직조해내는 소설가 김숨이 2권의 소설집을 동시에 펴냈다. 이혼을 소재로 한 중·단편 3편을 모은 ‘당신의 집’과 동물을 소재로 삼은 단편 6편이 실린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다. 작가는 강박적이면서 집요한 묘사로 이혼과 결혼, 동물과 인간 그 영원히 포개질 수 없을 것 같은 틈 사이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정교하게 그려냈다.

‘당신의 신’ 첫머리에 놓인 ‘이혼’에서 이혼을 앞둔 민정은 남편 철식과의 결혼 생활로 상처입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주변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의 기억 역시 고스란히 복기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사진을 찍어 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철식은 유방 절제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는 민정의 고통에는 무감각하다. 평생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민정의 어머니는 스스로 이혼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 이를 정도로 폭력에 감각이 마비된 상태다. 이혼 후 추문에 휩싸여 해고당한 민정의 선배 영미는 “한 인간으로서 끝났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정착하기 어려워한다. 민정이 때때로 폭력적인 ‘우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로 서기 위해 철식에게 선언하듯 건넨 말은 상대의 고통에 무감각한 인간에게 이르는 작가의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64쪽)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는 쥐, 염소, 자라, 벌, 노루, 나비 등 총 여섯 종의 동물들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동물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인간의 일상과 환상에 불쑥 침투하지만 인간들은 매번 동물들을 포획하고 억압하는 데 실패한다. 해부학 실습을 앞둔 생물학과 학생들이 실습실에 도착하지 않은 염소를 기다리며 장기와 피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지만 끝내 염소는 해부대에 오르지 않는가 하면(‘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아파트에 나타난 쥐를 잡으러 온 ‘쥐잡기 전문가’들이 망치, 쇠막대, 쇠꼬챙이 같은 무시무시한 도구로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그녀’의 불안만 부추기고 끝내 쥐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다.(‘쥐의 탄생’) 작가는 안락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동물의 생을 제멋대로 제압하려는 인간들의 의지를 보기 좋게 꺾어 놓는다. 죄의식 없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채 인간들이 설계한 인위적인 세계에 동물을 가두는 인간의 폭력성은 우스꽝스럽고 어리석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7-10-28 18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