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한 동료였던 남과 여, 꿈에서 사슴으로 만나다

일디코 엔예디 감독은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한국어 제목)로 2017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투자금 유치 등 여러 문제로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했던 그녀는 ‘육체와 영혼에 대하여’(영어 제목)로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다시 각인시켰다.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것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살았으면 했다.” 이 영화의 기획 의도를 묻는 질문에 엔예디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에서는 ‘누가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서 그 위험을 감수하는가.’ 각자의 고독에 침잠해 있는 남자 엔드레(게자 모르산이)와 여자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다. 아래 글은 그들의 입장을 독백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 엔드레 : 눈 내리는 숲을 천천히 거니는 꿈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수사슴이었고, 곁에는 암사슴이 있었다. 우리는 먹을 만한 풀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같이 시냇물을 마시기도 했다. 숲의 정적을 깨뜨리는 존재는 수사슴과 암사슴뿐,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 마리어 : 도축장에서 품질 검사원으로 일하게 됐다. 점심시간 구내식당, 내가 혼자 식사하는 테이블에 낯선 남자가 와서 앉았다. 그는 자신을 회사에서 재무이사로 일하는 엔드레라고 소개했다. 그가 묻는다. “난 거의 죽을 먹는데 왠지 알아요?” 나는 대답한다. “한쪽 팔이 불구라서 유동식이 먹기 편해서겠죠.” 실제로 그의 왼팔은 오른팔과 달리 굳어 있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 엔드레 : 마리어는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녀가 조금의 융통성도 발휘하지 않는 원칙주의자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모르겠다. 그녀에게 다가가기 어렵다. 그런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심리 상담을 받고 나서, 나는 그녀를 새롭게 보게 됐다. 아마 그녀도 그랬으리라. 왜냐하면 우리가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내 옆에 있던 암사슴이 바로 그녀였다. 오늘밤에도 우리는 겨울 숲에서 사슴으로 만난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마리어 : 집에서 나는 홀로 인형 놀이를 한다. 남자 인형은 엔드레, 여자 인형은 나다. 이러면 평상시에 할 수 없었던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다. “엔드레 : 날 그저 늙은 불구자로 보나 본데 기분이 나빠요.” “마리어 : 난 당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정말 그렇다. 꿈속에서 그는 나를 배려하는, 우람한 뿔이 멋진 수사슴이므로. 어쩌면 현실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신(영혼)과 몸(육체)이 단단하게 연결돼 있듯이. 3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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