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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으로 꽃 피운 발칙한 빨간 망토

창극으로 꽃 피운 발칙한 빨간 망토

신융아 기자
신융아 기자
입력 2018-02-28 18:16
업데이트 2018-02-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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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소녀가’

흔히 아는 서양의 구전 동화 ‘빨간 망토’ 이야기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 집으로 가던 소녀가 음흉한 늑대의 꾐에 넘어가 할머니와 함께 늑대에게 잡아먹히거나, 또는 사냥꾼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구출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소리꾼 이자람·이소연이 들려주는 빨간 망토 이야기는 좀 다르다. 성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 빨간 망토는 호기심 넘치고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독립적인 소녀다. “다 알고 있었다”고 말하며 늑대가 먼저 도착해 있는 할머니의 집을 노크하는 요염한 표정의 소녀는 발칙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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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구전 동화 ‘빨간 망토’가 우리 전통 소리를 만나 창극 ‘소녀가’로 변신했다. 소녀에서 여자로 점점 성숙해 가는 빨간 망토 소녀는 숲속에서 꽃을 발견하고는 기쁨에 들떠 뒹군다. 이소연이 소녀와 늑대, 스토리텔러를 넘나드는 독무대를 펼친다.  국립창극단 제공
서양의 구전 동화 ‘빨간 망토’가 우리 전통 소리를 만나 창극 ‘소녀가’로 변신했다. 소녀에서 여자로 점점 성숙해 가는 빨간 망토 소녀는 숲속에서 꽃을 발견하고는 기쁨에 들떠 뒹군다. 이소연이 소녀와 늑대, 스토리텔러를 넘나드는 독무대를 펼친다.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이 올해 기획한 신(新)창극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소녀가’가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자람이 연출하고, 이소연이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만으로도 공연은 이미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배우이자 소리꾼, 인디밴드 보컬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자람은 ‘소녀가’에서 연출뿐만 아니라 극본, 작창, 작곡, 음악감독 등 1인 5역을 소화했다.

창극 ‘소녀가’는 소녀의 호기심과 욕망은 건강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늑대의 꾐을 간파하고 골려 주는 명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자람은 2010년 프랑스 작가 장 자크 프디다가 ‘빨간 망토 혹은 양철 캔을 쓴 소녀’라는 제목으로 다시 쓴 빨간 망토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의 관점과 해석이 더해지는 구전 동화의 특색을 기가 막히게 살렸다.

특히 이 작품은 국립창극단에서 처음 시도하는 모노드라마 형식의 창극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한 명의 소리꾼이 내레이션과 등장인물들의 역할을 하며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판소리 형식에서 여러 소리꾼이 나와 여러 배역을 나눠 맡는 것으로 파생된 창극이, 다시 역으로 한 명의 배우가 여러 역할을 겸하는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원형 무대에는 배우와 조명, 그리고 빨간 망토 외에는 어떤 장치도 없지만 소리꾼이자 배우, 이야기꾼의 역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소연의 변화무쌍한 연기는 70분간 빈틈없이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철로 만든 옷, 빨간 망토, 늑대, 꽃밭 등 다양한 은유 속에 함축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예컨대 소녀는 조금씩 성숙해지면서 철로 만든 옷과 신발을 신게 된다. 소녀의 몸을 ‘철컹철컹’ 감싸는 철로 만든 옷은 소녀에게 철이 들 것, 즉 조신함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규범으로 읽힌다. 마침내 철옷과 철신발을 벗고 빨간 망토를 걸치게 된 소녀는 그토록 궁금해하던 숲속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 마주치는 늑대는 어린 소녀를 유혹하는 남자를 의미한다. 또 소녀가 꽃밭에서 발견하고 황홀해하는 꽃은 막 피어나는 소녀의 여성성으로 은유된다.

고수 이준형의 전통 소리북 장단에 대중음악계 최고의 건반연주자 고경천, 베이시스트 김정민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선율과 다양한 음악적 효과는 극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린다. 공연은 4일까지.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2018-03-0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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