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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의 생각 담은 공부] 암기 공부의 역습

[박주용의 생각 담은 공부] 암기 공부의 역습

입력 2018-04-25 17:22
업데이트 2018-04-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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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이젠 정말 변화해야 할 때다. 입시나 취업에서 경험하는 경제적 부담과 주관적 고통에 추가해 국제 비교 연구 결과를 통해 본 객관적 교육 성과가 참담하기 때문이다. 만 15세일 때는 최상위 수준의 학업 성취도를 보인다. 그런데 그때를 정점으로 줄곧 하락해 50~60대의 경우 조사 대상인 21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0위가 된다. ‘압력밥솥’ 수준의 공부 압력 속에서 암기에 몰입해 학창 시절을 보낸 결과가 부메랑이 돼 대부분의 한국인이 졸업 후에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더 방치될 수 없다.

도대체 공부가 뭘까. 넓게 보면 공부는 자기주도적 탐구 활동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왜 사는지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런 노력은 자연스럽게 인간으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우주만물로 그 탐구 범위를 넓히게 한다. 우리 각자는 이런 탐구를 통해 일관성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되고,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낫다는 착각을 줄이는 한편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소크라테스는 “성찰을 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던 것 같다.

오늘날의 공부에서는 인류가 그동안 축적해 온 지식을 배우는 비중이 훨씬 커졌다. 즉 학습의 의미가 강해졌다. 그런데 사교육은 우리 학생들의 자기주도성을 저해한다. 통계청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당 사교육 참여 시간의 경우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6.4시간, 고등학생은 4.1시간이다. 이런 사교육에 드는 가계 지출은 17조 8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수치가 실제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배우느라 스스로 탐구할 시간은커녕 잠잘 시간도 없다. 이 과정에서 공부의 의미는 암기 활동으로 축소됐다.

그렇지만 이미 오래전 공자가 지적했듯이 배우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게 없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ㆍ위정편). 배운 지식은 사용되지 않으면 쉽게 망각되는데, 너무 많이 배우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없다. 결국 남는 게 없는 공부를 하는 것이 지금 우리 상황이다. 암기 중심 공부는 대학에서도 지속된다. 학벌을 중시해 적성이나 관심보다는 점수에 맞추어 전공을 선택하다 보니 내적 동기에 의해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으로 영어 공부를 비롯한 소위 스펙 쌓기에 신경을 쓰다 보면 전공 영역을 공부하는 시간 자체도 많지 않다. 이런 학생들에게 또다시 많은 양의 정보가 강의를 통해 전달된다. 대학에서조차 단편적인 지식을 묻는 방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갈고 닦은 암기 실력을 발휘하면 어느 정도 학점이 나오는데, 더 깊게 알려고 파고들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전공 필수 과목을 어떻게든 이수한 다음에는 재미있고 성적도 잘 나오는 ‘꿀강의’를 수소문해 찾아 듣고 학점을 채우면 졸업장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공부로 인해 우리 사회는 다양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와 담을 쌓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 증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2017년 국민독서실태 조사와 통계청의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서 볼 수 있는데, 성인의 40% 이상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산업계의 경우 다른 나라의 기술을 받아들여 빠른 추적자로서 성공했지만, 여전히 들이는 시간에 비해 노동 생산성이 낮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는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많은 논문이 발표되지만 논쟁도 없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사회 각계의 리더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자리에 걸맞게 구성원들의 참여를 독려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안전하게 자리를 보전하거나 국가나 조직보다는 부서의 이익이나 심지어 사익을 추구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그 결과 현재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희망보다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어디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할까. 바로 평가다. 이 주제를 포함해 생각을 담는 공부를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내용들을 이 칼럼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2018-04-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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