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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한·일 관계 기초 구축”…외신 “쿠데타 일으킨 군인”

아베 “한·일 관계 기초 구축”…외신 “쿠데타 일으킨 군인”

김태균 기자
입력 2018-06-24 18:10
업데이트 2018-06-2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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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도 ‘JP 별세’ 보도
日 언론들 속보·1면 기사 전해
나카소네 “오랜 친구를 잃었다”

中 참고소식망 ‘독도 어록’ 소개
美선 ‘정보기관 창설자’ 등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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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오전 별세했다. 92세. 1971년 4월 15일 7대 대통령 선거 유세를 벌인 강원 춘천 공설운동장에서 김종필(왼쪽) 당시 민주공화당 부총재가 따가운 봄 햇살을 가리기 위해 공화당보를 접어 만든 고깔모자를 육영수(오른쪽) 여사에게 씌워 주고 있는 모습. 김 전 총리는 육 여사의 시조카 사위다.  연합뉴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오전 별세했다. 92세. 1971년 4월 15일 7대 대통령 선거 유세를 벌인 강원 춘천 공설운동장에서 김종필(왼쪽) 당시 민주공화당 부총재가 따가운 봄 햇살을 가리기 위해 공화당보를 접어 만든 고깔모자를 육영수(오른쪽) 여사에게 씌워 주고 있는 모습. 김 전 총리는 육 여사의 시조카 사위다.
연합뉴스
한국 정치·외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을 해외 언론들도 신속하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고인이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의 주역으로서 특히 깊은 관계를 맺었던 일본의 경우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많은 인사들의 조의가 전해졌으며, 언론들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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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 당시 김종필(왼쪽) 신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부인 박영옥씨와 함께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87년 9월 당시 김종필(왼쪽) 신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부인 박영옥씨와 함께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지난 23일 김 전 총리의 타계 소식을 접한 뒤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으로 한·일 관계의 기초를 구축했다”며 신속하게 조의를 표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하는 메시지를 통해 “깊은 슬픔을 금할 수 없으며,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대표해 충심으로 명복을 빈다”고 했다.

고인의 오랜 친구로 지난달 100세 생일을 맞았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도 “김 전 총리는 한·일 양국의 우호와 발전을 위해 크나큰 노력을 했다”며 “지난해 김종필 증언록(일본어판)이 출간됐는데,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오랜 친구를 잃어버려 진심으로 슬프다”고 발표했다.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오늘날 한·일 관계의 토대를 만든, 정말로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며 “한·일 관계가 곤란한 과제에 직면했을 때 경험을 살려서 스스로 땀을 흘려 주었던 고인의 정열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일본 언론들은 김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을 속보로까지 전했으며 아사히, 요미우리 등 주요 신문들은 24일자 조간에서 1면 기사로 다뤘다. 대부분 김 전 총리를 ‘지일파’라고 표현하면서 그가 대일 청구권 협상을 주도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당시에는 일본 정부의 수사를 무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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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오른쪽) 당시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1997년 9월 3일 SBS 특별생방송 ‘대통령 후보와 함께’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수 노사연(왼쪽)씨와 함께 가요 ‘만남’을 아코디언으로 연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필(오른쪽) 당시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1997년 9월 3일 SBS 특별생방송 ‘대통령 후보와 함께’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수 노사연(왼쪽)씨와 함께 가요 ‘만남’을 아코디언으로 연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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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왼쪽) 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1989년 경기 한 골프장에서 함께 골프를 치던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자 파안대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필(왼쪽) 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1989년 경기 한 골프장에서 함께 골프를 치던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자 파안대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이니치신문은 김 전 총리에 대해 “1976년 한·일의원연맹의 초대 회장에 취임하고 나카소네 전 총리 등 일본 정계에 지인이 많다”며 “한·일 관계의 통로로서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교도통신은 “일본 보수 정계와의 인맥을 살려서 대일 정책을 추진했다”고 소개했다.

중국 주요 매체들도 김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인 해외망은 김 전 총리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로 두 차례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며 1961년 중앙정보부 초대부장을 맡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중국 최대 발행부수를 보이는 참고소식망은 김 전 총리가 생전에 많은 어록을 남겼는데, 특히 1962년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무상과의 회담에서 독도 영유권 분쟁과 관련, “독도를 폭파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강경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김 전 총리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삼김’(三金)으로 불리며 한국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썼다.

AP, AFP, dpa통신 등은 구미계 언론들도 김 전 총리를 ‘한국 정보기관 창설자’,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 등으로 표현하며 별세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다. AP통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쿠데타에서 중심 인물이었다”며 “대권에 도전한 적은 없지만 ‘킹메이커’ 역할을 했으며 ‘영원한 2인자’로도 불렸다”고 소개했다. AFP통신은 “1980~1990년대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여겨진다”고 썼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2018-06-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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