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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훈의 간 맞추기] 이혼 대목

[유정훈의 간 맞추기] 이혼 대목

입력 2018-10-09 17:18
업데이트 2018-10-1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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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특별히 일이 몰리는 시기가 정해진 업은 아니다. 그런데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는 ‘대목’이라고 부를 시즌이 최근 생기지 않았나 싶다. 바로 명절 직후다.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접수된 이혼사건은 10만 8880건으로 하루 평균 298건인데 설날과 추석 이후 열흘은 하루 평균 700건이 넘는다니, 구체적인 통계로 입증되는 바이다. 그런 추세가 올해에도 이어진다면, 아직까지 평소보다 많은 이혼소장이 접수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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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훈 변호사
유정훈 변호사
법적 관점에서 결혼은 넓은 의미의 계약에 속한다. 그런데 혼인은 개인 간의 계약 해소에 국가기관의 확인 혹은 경우에 따라 판결까지 필요한 극히 예외적인 사례다. 이렇게 계약의 해소를 어렵게 하면 한편으로 계약의 구속력이 강해지지만, 부작용으로 어느 당사자가 상대방에 대해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이거나 심지어 배신행위를 하고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죄수의 딜레마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상대방의 합의 이행을 강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은 ‘같은 정도로 맞받아치기’(tit-for-tat)인데, 결혼제도에서는 상대방이 계약을 위반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실행하기 어렵다.

아쉽게도 명절은 한국에서 유교문화 내지 가부장제의 부정적 측면이 극대화되는 날이다. 그 원형과 의도가 어떠했든지 간에 드러나는 실제가 그러하다. 평등한 두 사람이 결혼했는데 왜 남편 집을 우선해야 하는지, 며느리가 부치는 전이 없으면 과연 조상을 모시기 어려운지, 며느리의 시댁과 사위의 처가 사이에는 왜 그리도 넓은 간극이 있는지 등등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명절은 대다수 기혼여성에게 자신이 종속적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당사자의 평등이라는 결혼의 기본전제에 어긋난다. 남성들은 “1년에 두 번인데 그 정도도 못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매년 두 번씩 그렇게 심각한 계약 위반을 하는데 이혼소장을 받아들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일이다.

누가 처음 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특권에 맛들이면, 평등도 탄압 같다”는 말이 있다. 기득권에 속해 있으면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이 특권인지부터 분간이 안 된다는 뜻이다. 명절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던 사람일수록, 이 정도면 합리적인 시댁 아니냐며 마음 한편 뿌듯했던 사람일수록, 이 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배우자가 그때그때 맞받아치지 않는다고 마음 놓고 있다 한 방에 이혼소장이 날아드는 법이니, 명절 때의 행태를 비롯해 겸손히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평소 행동거지를 조신하게 할 일이다. 금세 다가오는 다음 명절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시정조치를 마련하여 동의 의결을 받아두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혼사건을 하지 않으니 이혼 전문 변호사의 속사정을 알지 못하고, 이혼이라는 타인의 불행을 놓고 함부로 얘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조그만 사무실을 꾸려 나가는 입장에서 뭐라도 ‘대목’이라도 하나 있으면 싶어 명절 이혼을 소재로 삼은 것은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2018-10-10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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