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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농민 백남기 투쟁에 함께 선 ‘작은 사람들’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농민 백남기 투쟁에 함께 선 ‘작은 사람들’

입력 2018-11-15 17:48
업데이트 2018-11-1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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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정은정 지음/윤성희 사진/따비/296쪽/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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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날인 2015년 11월 14일의 이야기는 두 번째 장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저자는 첫 번째 장을 2018년 1월 백남기 농부의 아내 박경숙과 함께 경남 산청에 간 이야기에 할애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산하 산청군 농민회 등 양 기관 부회장과 혜화동 농성장을 가장 오랫동안 지켰던 젊은 농민 이종혁을 만나는 이야기다. 지난하고 오랜 투쟁을 먼 거리에서 지켜본 사람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시간 순서도 아니고, 역순도 아니고. 첫 장을 왜 그렇게 배치했는지는 그 장의 마지막 문장에 비로소 드러난다.

“이들은 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백남기 농민투쟁의 앞에 나서서 싸움을 이끌지 않았다. 다만, 자리를 지켰다. 이들이 지켰던 자리는 서울의 농성장이기도 했고 산청의 백남기 농민 분향소이기도 했다. 이제는 자신들 생활의 자리를 열심히 지킨다. 그들은 농성장에서든 분향소에서든 다른 사람들에게 앞자리를 자꾸 내주며 맨 뒷자리에 앉기를 자처했다. 훗날 돌이켜보니, 자리를 지키고 마음을 보태는 일이 백남기 농민 투쟁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농촌사회학을 전공한 사회학자 정은정은 백남기 농민 투쟁 과정을 기록하면서 중요한 사건들과 배경 설명을 놓치지 않는 한편 투쟁의 기나긴 과정에 음으로 양으로 함께한 수많은 ‘작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투쟁이 값진 이유는 이 작은 사람들의 어쩌지 못하는 마음들이 그날 서울대병원에, 거리에, 광주 망월동에 모여 이뤄낸 것이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꾸준히 백남기 농민투쟁을 기록해 온 사진작가 윤성희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인물사진을 가능한 한 그들의 생활현장에서, 슬퍼하지만은 않는 눈빛으로 담아내려 했다. “삶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일단락 지어진 투쟁에 관해 머리부터 꼬리까지 꿰뚫은 기록이자, 이 투쟁의 이전과 이후를 헤아려 바라보는 시선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해결될 수 있는지, 작은 목소리들을 모아 단단하게 엮은 밧줄이다.

투쟁을 통해 얻는 것은 그저 승리만은 아니다. 투쟁에 헌신적으로 나서는 동시에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이들은 바로 자신의 자리에서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독자 또한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이 씨앗의 일이리라. 농사의 법칙이리라. 이렇게 또, 백남기 농민에게 배운다.
2018-11-16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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