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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의 혁신경제] “저게 되겠어”에서 나오는 혁신

[임정욱의 혁신경제] “저게 되겠어”에서 나오는 혁신

입력 2018-12-02 20:32
업데이트 2018-12-0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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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뉴욕을 방문했을 때 한 대형 자산운용사 한국 담당 분석가들과 미팅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침체돼 있다는 것이었다. “반도체, 삼성전자를 빼고는 그다지 잘하는 곳이 없다. 특히 많은 대기업들이 경영을 잘 못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네이버, 카카오 등 한국의 주요 정보기술(IT) 회사들도 기대에 비해 기업 가치를 불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뉴욕을 방문하는 대기업 경영자들을 만나는 일이 있는데, 그들이 너무 틀에 박힌 단조로운 말만 한다는 얘기도 했다. 진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반면 중국 회사의 경영자들은 다르다는 말도 했다. 더 적극적으로 회사를 설명하고 의견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분석가들과 의견이 달라 싸우듯이 토론하기도 한단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중국 회사가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한국에도 요즘에는 매력적인 성장 스타트업이 많다고 이야기를 해 주긴 했지만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기업 공개 이전인데도 급성장해 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는 회사를 유니콘스타트업이라고 한다. 이런 유니콘스타트업이 전 세계에 300개 가까이 되는 시대다. 그런데 한국에는 상장기업 중에도 1조원 이상 시가총액의 회사가 너무 적다. 12월 초 코스피에는 1조원 가치가 넘는 종목이 174개였다. 코스닥에는 26개다. 대부분이 재벌 기업 관련 계열사이거나 공기업이 많다. 근 5년 이래 급성장해 상장기업 시총 1조클럽에 새로 가입한 회사는 거의 없다. 게다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하락 중인 기업이 많다. 성장기업이 많은 코스닥에는 시가총액이 1000억원도 안 되는 종목이 62%나 된다. 새로운 기업이 계속 유가증권시장에 들어오고 성장해야 하는데 뭔가 막혀 있는 것이다. 이러니 해외에서 한국 기업 생태계는 정체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니 새로운 투자도 줄고 일자리도 생기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확실히 스타트업이 희망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창업투자사에게서 투자를 받은 주요 스타트업을 집계하고 있는데, 누적 100억원 이상 투자받은 스타트업이 최근 113곳에 달했다. 이들 중 웬만한 코스닥 상장사보다 기업 가치를 더 높게 인정받은 회사들도 많다. 이들이 미래의 유니콘기업이다. 왜 새로운 스타트업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가? 세상이 무섭고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기성세대가 경영진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기존 대기업은 변화에 빨리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밀레니얼세대는 더이상 TV를 보지 않는다. 신문도 읽지 않는다. 이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열광한다. 정보를 얻는 채널이 기성세대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들에게 인기 있는 토스, 마켓컬리 같은 스타트업서비스를 40대, 50대 이상 기성세대는 전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미래는 젊은이의 마음을 잡은 회사에 있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빨리 읽고 대응하지 못하면 기업 가치는 추락한다. 벤처 1세대 성공 신화의 주역인 휴맥스는 2000년대 유료방송시장 성장과 함께 TV 셋톱박스로 글로벌 유니콘기업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이 셋톱박스에서 넷플릭스, 유튜브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트렌드에 일찍 대응하지 못해 기업 가치가 급감하며 고전하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대기업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더 늘어날 것이다.

반면 이런 밀레니얼세대를 잘 이해하는 새로운 스타트업들은 “저게 되겠어”라는 비판을 딛고 급성장 중이다. 수직적이고 토론이 없는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는 “저게 되겠어”를 이기고 기업을 키우기 어렵다. 보수적인 문화 속에서 지지를 얻고 투자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뭐든지 이야기하고 시도해 보는 문화의 실리콘밸리, 이스라엘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에서 혁신기업들이 더 많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창업 후 “저 회사 언제 망하나 두고 보자”는 비아냥을 항상 들어온 쿠팡이 최근 소프트뱅크에서 약 2조 2000억원의 거액을 투자받았다. 야후, 알리바바의 초기에 거액을 투자해 성공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보는 눈이 다른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고 비판하기보다 새 영역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거두고 응원하고 밀어줄 때다. 그들이 한국 기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2018-12-0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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