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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 같았다”… 생지옥이 된 ‘중동의 파리’

“히로시마 원폭 같았다”… 생지옥이 된 ‘중동의 파리’

안석 기자
안석, 박기석 기자
입력 2020-08-05 17:36
업데이트 2020-08-0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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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4100여명 사상

검은 연기 이웃나라 시리아까지 퍼지고 240㎞ 떨어진 지역서도 폭발음 들려
“거대한 폭발음 탓에 청력 잃을 정도…버섯 구름 몰려와 비명 지르며 도망”
밤새 SNS에 실종자 찾고 헌혈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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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4일(현지시간) 대형 폭발 참사가 일어난 후 현장에서 구급대원과 시민들이 부상자를 들것에 실어 이송하고 있다. 베이루트 AFP 연합뉴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4일(현지시간) 대형 폭발 참사가 일어난 후 현장에서 구급대원과 시민들이 부상자를 들것에 실어 이송하고 있다.
베이루트 AFP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오후 6시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는 폭발음과 함께 지축을 흔드는 강한 진동이 발생했다. 일부 시민들은 지진이 났다고 생각하고 반사적으로 바닥에 웅크린 뒤 다음 진동을 기다리던 찰나 훨씬 더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주변 건물들이 순식간에 붕괴됐다. 쾌적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한때 ‘중동의 파리’로 불렸던 베이루트가 핵폭탄이 투하된 것과 같은 생지옥으로 급변한 순간이었다.

이날 폭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레바논에서 약 240㎞ 떨어진 키프로스에서도 폭발 소리가 들릴 정도였고, 사고 현장에서 7.3㎞ 떨어진 주레바논 한국대사관의 건물 유리 2장이 파손되기도 했다. 도시 상공에는 원자폭탄이 터진 것을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버섯구름이 형성됐고, 검은 연기는 인접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번졌다. 한 목격자는 BBC에 “거대한 폭발음에 몇 초간 청력을 잃을 정도였다”면서 “주변의 건물과 자동차, 상점들이 모두 파괴됐다”고 전했다. CNN 베이루트 지국의 벤 웨드먼은 “처음엔 지진이 난 줄 알았다”면서 “잠시 뒤 사무실 유리가 부서지고, 창문 밖에는 거대한 구름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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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4일(현지시간) 대형 폭발로 형성된 하얀 먼지구름 같은 충격파가 도시 주변 일대를 덮치는 모습을 찍은 소셜미디어서비스의 동영상 캡쳐 사진. 베이루트 로이터 연합뉴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4일(현지시간) 대형 폭발로 형성된 하얀 먼지구름 같은 충격파가 도시 주변 일대를 덮치는 모습을 찍은 소셜미디어서비스의 동영상 캡쳐 사진.
베이루트 로이터 연합뉴스
베이루트 시장은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서 일어난 폭발 같았다.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참담함을 전했다. 밤새 통곡 속에 수색과 구조작업이 진행됐지만 재앙급 참사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시 전체가 붕괴된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구조작업도 위험하다. 지금까지 구조에 나선 소방대원 100명가량이 실종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발생 초기 20명 안팎으로 추정되던 사망자는 100명 이상으로 늘어났고, 부상자는 4000명을 넘어섰다. 무너진 건물이나 집 속에 갇힌 사람들이 많아 앞으로 희생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고군분투 중이던 베이루트 시내 병원엔 밤새 부상자가 몰려들어 아비규환 상황을 연출했다. 사방이 피투성이가 된 현장에서 이송된 부상자들로 응급실이 가득찼고, 의료진은 복도나 주차장에서까지 환자들을 치료해야 했다. SNS에는 실종자를 찾고, 헌혈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쇄도했다.
레바논 정부는 일단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 장기간 적재된 인화성 물질 질산암모늄을 참사 원인으로 지목하며 관리소홀에 따른 ‘인재’일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모하메드 파미 내무 장관은 예비 조사를 근거로 “2014년 화물선에서 압수해 부두 창고에 보관 중이던 2750t 상당의 질산암모늄이 폭발한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장 목격자들도 질산염 관련 폭발 이후 발생하는 유독성 가스가 유출될 때 만들어지는 주황색 구름을 봤다고 전해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레바논에서 폭발 공격 테러가 최근 15년간 13건이나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 역시 외부세력의 소행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폭탄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번 대형참사로 국가부채와 높은 실업률 등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레바논의 위기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은 이미 경제위기에 따른 민심이반으로 수개월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AP는 레바논에 수입된 곡물 85%가 저장돼 있던 사일로(곡식 저장소)가 이번 폭발로 파괴됐다며 식량 대부분을 수입하는 레바논이 식량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한편 이번 사고에 따른 한국인 인명 피해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는 5일 “주레바논 대사관은 사고 직후 현지 재외국민 단체 채팅방 등을 통해 우리 국민 피해 여부를 확인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접수된 인명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2020-08-0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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