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방제복을 입고 30초의 ‘에어 샤워’를 마치자 사업장 쪽으로 난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이윽고 자외선이 차단된 노란색 형광등 불빛이 온몸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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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삼성전자 반도체의 주력품인 비(非)메모리반도체 시스템 LSI가 생산되는 경기 용인시 기흥반도체공장 5라인 클린룸. 건설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활발히 가동 중이다. 100여명의 직원들이 통로 양 옆에서 금속화합물 박막을 덧붙이거나 깎는 공정에 열중하고 있다. 공정 대부분은 반도체 자동장비가 담당하지만 사람의 손길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직원들이 플라스틱통에 담긴 지름 20㎝ 정도의 웨이퍼를 카트로 옮기거나 장비 안에 넣고 있다. 스피커를 통해 나지막이 들리는 라디오 소리 사이로 직원들이 바삐, 그러나 침착하게 일손을 놀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무리 바빠도 반도체에 치명적인 먼지가 날릴 수 있어 클린룸 안에서는 절대로 뛰지 않는다.”면서 “사람이 여럿 있으면 반도체의 암모니아 수치가 증가하기 때문에 3명 이상이 모이는 것도 금지사항”이라고 귀띔했다.
2004년 말 완공된 S라인은 거의 모든 공정이 자동으로 이뤄지고 있다. 파운드리(수탁가공) 제품을 생산하는 이곳에서는 삼성 마크가 새겨진 로봇 장비 셔틀이 천장의 라인을 따라 오가며 웨이퍼를 분주히 옮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5라인 등 과거 라인들은 조만간 전자동 생산시설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1983년 공장설립 이후 최초로 국내외 보도진에게 반도체 생산라인을 공개했다. 생산 방식이나 공장 설계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반도체 업계에서 생산 라인은 ‘극비 시설’에 해당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칼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 등 소수의 내외빈에게만 공개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날 공개가 이뤄진 것은 최근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했던 20대 여직원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삼성 반도체 공장의 안전성 논란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백혈병 환자가 9명 발생하고, 이중 5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시민단체는 22명 발병에 9명이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차례의 산업안전공단 역학조사에서는 ‘작업 환경에 따라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지난해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에서는 공장에서 쓰이는 약품에서 암을 유발하는 벤젠이 허용치 이상 검출된 것으로 나왔다.
조수인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메모리담당 사장은 “국내외 분석기관들이 재확인한 결과 벤젠 성분이 제조 공정 중에 검출되지 않았고, 공기 중에 노출되지 않아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이어 “앞으로 국내외 의료기관과 전문가 등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조사에 착수하고, 사망 직원 유가족 등을 대상으로도 적당한 시기에 사업장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또 최근 설립된 삼성전자 건강연구소를 통해 임직원의 건강 증진을 위한 중장기 활동도 펼치기로 했다. 그러나 과거에 현장에서 안전 수칙이 잘 지켜졌는지는 불명확하고, 백혈병 등이 발병한 과거 라인들도 개조 등을 통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2010-04-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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