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금융동반자… 증권사 존재 이유죠”
1980~90년대 런던 증권가에서는 ‘제임스 본드’보다 ‘제임스 유’가 더 유명한 적이 있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주식을 가장 많이 팔아치운 베스트 세일즈맨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하루 거래량 5%를 매매한 ‘전설의 인물’이 바로 한국투자증권 유상호(50) 사장이다. 은행원에서 증권맨으로, 자신이 세운 ‘전략적 로드맵’에 따라 증권업계에 들어섰다는 유 사장은 마흔 일곱에 한국증권의 사장이 돼 업계 최연소 최고경영자(CEO)라는 기록도 세웠다.
한국투자증권 제공
지난해 업계 상위권 수익을 낸 유상호 사장은 “사람이 곧 생명이라는 믿음속에 원하는 인재를 직접 뽑고 싶을 정도로 사람에 욕심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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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생명”… 곧 200명 채용
유 사장은 요즘 서울 시내 대학을 돌며 몸소 인력 채용에 나서고 있다. 증시 호황기였던 2007년 이후 최다인 200명을 올 하반기에 대거 채용하게 된 데는 사람이 곧 생명이라는 그의 믿음이 크게 작용했다. 신입 직원의 메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답한다는 원칙을 지닐 정도로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유 사장인 만큼 원하는 인재를 직접 뽑고 싶은 욕심도 남다른 것이다.
한국증권은 유 사장은 물론이고 부서장 등 리더에 대한 평가 항목 중에 좋은 인원을 다른 곳에 얼마나 안 뺏기느냐가 핵심 요건으로 포함돼 있을 정도로 사람 관리에 주력한다. 유 사장은 “매년 직원들의 1인당 보상금액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인력 관리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에 대한 스킨십도 극진하다. “나중에 지인들을 불러놓고 직접 음식을 해주는 게 꿈”이라고 말할 만큼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는 지난해 지점 직원들에게 볶음밥을 해주겠다고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업계 상위권의 수익을 낸 것도 사람 관리를 잘한 덕분이다. 특히 한국증권은 브로커리지(주식매매) 실적에 따라 수익 규모가 결정되는 다른 증권사들과 달리, 삼각편대가 균형있게 짜여 있다는 강점이 있다. 유 사장은 “업계 평균으로 보면 전체 수익 가운데 브로커리지가 절반 가량이라면 우리는 브로커리지 36.5%, 자산관리 15.8%, 투자은행(IB) 23.1%로 세 부문 모두 안정돼 있다.”고 말했다.
5년 전 동원증권과 한국증권를 합치면서 양사의 직원들을 양손잡이로 만들어줬기 때문이라는 게 유 사장의 설명이다. “동원 출신은 브로커리지만, 한국증권은 펀드만 파는 사람들로 반쪽 서비스를 하던 것을 지난해 직군을 통합하면서 주식매매와 자산관리에 모두 시너지가 생긴 거죠.” 판매력이 향상되니 물건 만드는 공장 역할을 하는 IB에서도 신나게 물건을 만들었다.
세계경기 횡보… 국내증시 밝아
한국증권은 올해 증시의 가장 큰 축제인 삼성생명 상장의 대표 주관사로 선정돼 기업공개(IPO) 부문에서도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유 사장은 “(대표 주관사 선정은) IPO를 국내에서 가장 잘한다는 게 시장에서 공인된 것으로 이 때문에 요즘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속된 말로 ‘먹어주고’ 있다.”면서 “삼성생명 상장은 증권 시장이 생긴 이후 가장 큰 IPO로 앞으로 10~20년 내에도 이런 큰 물건은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 가능성이 늘 매복해 있는 최근의 시장 상황에 대해 유 사장은 앞으로 세계 경기가 더블딥까지는 아니더라도 횡보 정도의 미니딥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금융위기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도 필요하고 중국 증시도 올해 반등을 많이 했기 때문에 과열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가 전망은 긍정적이다. 유 사장은 “국내 주가가 전 세계적으로도 제일 싼 편이고 올해 기업 이익도 사상 최대인 100조원을 육박할 전망이라 환율 강세 영향에 실적 효과가 상쇄된다 하더라도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유 사장은 ‘금융 실크로드의 개척자’라는 별명답게 해외 진출에 남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05년 베트남 펀드를 국내 처음 개발했고 중동 머니를 유치하기 위해 국내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이슬람 금융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베트남 증권사 인수를 추진 중인 상태로 국내 감독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중국 현지 법인 설립도 양국의 인가가 나는 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인니·베트남 등서 금맥 캘것
다음 타깃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동 등이다. 유 사장은 “베트남은 더 원초적인 단계로 법인을 낸 글로벌 플레이어가 없어 우리가 선점해 뿌리를 잘 내리고 있으면 (해외 증권사들과) 붙어볼 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치를 두는 것은 고객의 투자행위를 돕는 증권사 본연의 소명이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고객의 건전한 투자 활동을 도와 부를 증식시켜주는 겁니다. 고객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평생의 금융 동반자가 되어주는 것, 그게 증권사가 존재하는 이유죠.”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프로필
▲1960년 서울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 미 오하이오주립대 경영학석사(MBA) 졸업 ▲1985년 한일은행 ▲1988년 대우증권 국제부 ▲1992년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부사장 ▲1999년 메리츠증권 상무이사 ▲2002년 한국투자증권 부사장 ▲2007년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2010-10-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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