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불안은 건설ㆍ반도체ㆍ조선ㆍ항공운송에 직격탄

세계 경제 위기가 지속하면 저축은행, 신용카드, 할부ㆍ리스사 등 비은행권이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대외의존도가 높고 경기에 민감하며 금융시장 변동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는 건설ㆍ디스플레이ㆍ반도체ㆍ조선ㆍ항공운송ㆍ해상운송 등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다.

신용평가사인 한신정평가(주)는 23일 ‘최근 세계 금융시장 불안과 주요 산업별 모니터링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내 신용평가사가 업종별 위험 수준을 정밀 분석해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보고서는 금융시장 불안으로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저축은행이 위험해질 수 있으므로 ‘강한 수준’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의 자산 건전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져 신용경색과 소비감소가 본격화하면 저소득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의 부실이 심해지면서 금융당국이 진행 중인 저축은행 경영 정상화가 늦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용평가사의 이혁준 책임연구원은 “저축은행의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위기가 더 진행되면 자산건전성이 떨어지고 고객들은 돈을 맡기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회 현대증권 금융팀장은 “저축은행은 기존 부실을 털어낼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용경색이 오면 도산 위험에 직면하는 업체가 늘어날 것이다. 사주들이 개인재산을 내 자본금에 보태면 상황이 일찍 개선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신정평가는 신용카드업이 국내외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국내 신용판매 및 소비자금융 위주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어 주가ㆍ환율ㆍ금리 등 시장변수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신용이 경색되면 회사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신용카드사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는 카드업계 전체의 유동성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경기 둔화로 가계의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져 신용카드사들의 자산건전성 위험이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할부ㆍ리스사는 영업자금 전액을 회사채 발행 등 외부 차입으로 조달해야 하는 만큼 유동성 위험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이 신용평가사는 지적했다. 단기적으로는 자금시장 경색에 따른 조달금리 상승으로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업체들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외화차입금 차환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 신용평가사의 이수민 책임연구원은 “신용카드ㆍ할부ㆍ리스사 등은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아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대기업ㆍ은행 계열 외의 업체들은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정대희 연구위원은 “서민계층, 저소득층, 중소기업들이 주로 거래하는 비은행 쪽에서 먼저 문제가 생겨 은행 쪽으로 파급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신정평가는 은행업종에는 비교적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국내 은행들의 외화 잉여유동성과 외화 장기차입비율이 크게 개선돼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악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증권업종은 중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의 침체와 수익성 하락이 우려되지만, 단기적으로는 회전율 상승으로 수탁수수료가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건설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항공운송, 해상운송 등은 세계 금융시장 불안의 악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면서 강한 수준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도시가스ㆍ소매유통ㆍ식음료ㆍ주류ㆍ패션의류 등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입을 것이라고 한신정평가는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