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노숙인 그룹홈/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노숙인 그룹홈/이순녀 논설위원

입력 2010-05-29 00:00
업데이트 2010-05-29 00:3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항구도시 더반은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에 이어 제3의 도시로 꼽힌다. 4㎞가 넘는 아름다운 해변 덕에 휴양지로 이름 높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거대한 빈민촌이 형성돼 있어 거지와 부랑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이들이 자취를 감췄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경찰이 지난 2개월간 더반 거리를 떠돌던 어린이 400여명을 교외의 수용소로 보내는 등 거지와 부랑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고 한다. 당국은 이들을 복지 서비스가 가능한 안전한 장소로 보내고 있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들은 인권유린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앞서 케이프타운도 경찰을 동원해 대대적인 노점상 단속을 벌였다.

올림픽, 월드컵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유치한 나라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 손님들에게 깨끗한 거리, 아름다운 풍경, 친절한 시민의식 같은 좋은 모습만 보여 주길 원한다. 집에 손님을 초대할 때 미리 집단장을 하는 게 인지상정이듯 말이다. 하지만 도시미화, 거리정비란 이름으로 정부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일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국격 제고의 대명제 앞에 빈곤층의 인격은 무시당하기 쉽다. 선진화가 덜 된 나라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하다. 우리나라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재개발사업으로 수많은 철거민을 양산했다. 올림픽의 영광 뒤에 가려진 처참한 그늘은 ‘상계동올림픽’이란 다큐멘터리로 남아 있다. 이후에도 국제행사가 있을 때마다 노점상은 뒷골목을 전전해야 했고, 부랑자들은 숨을 죽여야 했다.

정부가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앞서 서울 지역 노숙인들에게 그룹홈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토해양부가 미분양 아파트 40~50채를 매입해 노숙인 쉼터 등 기존 보호시설이 수용하지 못하는 노숙인 500여명에게 살 곳을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다. 노숙인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함으로써 자활의지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들려오는 뒷얘기가 개운치 않다. 노숙인 그룹홈이 노숙인 보호 대책보다 단속 차원이라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26일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 관계기관들을 불러 ‘G20 대비 노숙인대책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노숙인을 거리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난 3월 전국 처음으로 노숙인보호조례를 제정한 대구시의회 같은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2010-05-29 27면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