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아주 낡고 진부한 변명/강병철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아주 낡고 진부한 변명/강병철 사회부 기자

입력 2010-08-26 00:00
수정 2010-08-26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오래된 영화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설경구-송윤아 커플이 호흡을 맞춘 영화 ‘광복절 특사’. 이 영화는 광복절을 앞두고 탈옥한 두 재소자의 에피소드를 그린 코믹물로…라고 시작하면 좀 진부하다. 광복절 특사 얘기랍시고 든 예가 같은 제목의 영화라니. 하지만 어차피 ‘진부한 관행’에 대해 말할 참이므로 그냥 이렇게 시작해보자.

이미지 확대
강병철 사회부 기자
강병철 사회부 기자
아무튼 탈옥한 둘은 우연히 신문을 보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내일 있을 대규모 특별사면에 자신들이 포함돼 있었던 것! 내일이면 당당히 석방될 것을, 하루를 못 참아 기를 쓰고 탈옥했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게다.

그러나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 탈옥이 아니고 저 특사 명단 부분 말이다. 사실 경필 같은 ‘개털’ 재소자 이름이 특사랍시고 신문에 나오는 건 대한민국 현실에선 불가능한 얘기다. 더구나 공개 의결된 명단마저 법무부가 감추는 상황에서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는 말씀.

법무부는 지난 13일 애초 사면심사위가 공개 의결한 특사 대상 107명 중 29명은 쏙 빼고 78명의 명단만 공개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에는 한창 한국을 시끄럽게 했던 비리법조인이 고스란히 포함돼 있었다. 그것도 8명씩이나.

처음 법무부는 대수롭지 않아했다. 보도자료가 길어지니 다 넣을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며…. 전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렇고, 그게 관행이라고 둘러댔다. 그게 관행이라는 법무부 말이 맞긴 맞다. 2008년에도 논란이 될 만한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고, 심지어 비공개 의결된 사람도 입맛에 따라 선별공개했으니….

관행이란 참 편한 핑계다. 과오를 지나간 시간, 과거의 인물들에게 몽땅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핑계는 설득력이 없다. 그러면 검사 스폰서도, 제 식구 감싸기도, 온갖 청탁도 다 관행 아닌가. 관행에 기대고 안주하면 결과는 뻔하다.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높은 이때, 관행을 핑계 삼는 궁색함이 너무 딱하고 진부하다. 핑계라도 좀 더 그럴듯한 걸 찾았더라면 신선하기라도 했으련만.

bckang@seoul.co.kr
2010-08-26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총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하자 이를 둘러싸고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에 활기가 돌 것을 기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소비쿠폰 거부운동’을 주장하는 이미지가 확산되기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