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침묵의 맹세/이춘규 논설위원

[씨줄날줄] 침묵의 맹세/이춘규 논설위원

입력 2010-10-20 00:00
업데이트 2010-10-2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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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지키자는 침묵의 맹세는 깨지기 쉽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가 단적이다. “당나귀 귀가 된 임금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특별한 모자를 썼다. 모자를 만든 이에게 발설하지 말도록 침묵의 맹세를 강요했다. 모자를 만든 사람은 아야기를 못하자 병이 났다. 대나무숲에 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하자 바람만 불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울려 세상에 알려졌다.”는 내용이다.

보통 사람들이 비밀스러운 일에 대해 침묵의 맹세를 지키기는 어렵다. 가족끼리, 친구끼리의 맹세 등이 그렇다. 비밀이 많은 정치인들은 비서나 운전기사, 경호원을 가족·친척으로 두어 비밀을 지켜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어느 정부에서든 실력자들은 비밀을 많이 알지만 언론인들이 질문하면 “입이 없다.”며 피해간다. 기밀이 많은 대기업들은 임원 이상에게 침묵의 맹세를 원하고, 지켜주면 대가를 지불해 주기도 한다. 맹세가 깨지면 총수가 홍역을 치르는 걸 자주 본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범죄조직 마피아 단원 사이에는 오메르타(Omerta)라는 침묵의 규약이 있다. 경찰 등에 잡혀도 조직의 비밀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협력을 거부한다는 침묵의 맹세다. 밀고자는 죽임으로 단죄한다. 귀가 들리지도 않고, 눈도 보이지 않으며, 조용한 자만이 100년을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시칠리아 속담과 관련이 있다. 수사관들은 이 침묵의 맹세를 고도의 수사 기법으로 무너뜨리곤 한다.

가톨릭 교회 교황을 뽑는 선거회의인 콘클라베. 추기경들은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 침묵의 맹세를 한다. 길게는 수일이 걸리는 콘클라베가 끝날 때까지 숙소와 개최 장소를 오가며 침묵해야 한다. 선거 뒤에도 침묵으로 비밀을 지켜낸다. 그렇지만 여러 종교의 성직자들도 침묵의 맹세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부패한 성직자가 성도와의 약속을 파기,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성직자들도 이러니 일반인들이야….

매몰 69일 만에 구조된 칠레 광산 광부들이 했던 침묵의 맹세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광부들은 매몰 뒤 외부에 생존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17일간의 내부분열 등 불편한 진실에 대해 전원의 동의가 없는 한 “함구하자.”고 맹세했다. 인터뷰 등 수입 또한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다. 하지만 언론의 취재 경쟁과 최고 수천만원의 인터뷰료 등의 유혹으로 맹세에 금이 가고 있다. 그렇다 해도 칠레광부 생환은 분명 사람들에게 희망을 쏘았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2010-10-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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