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서린 문화부 기자
출장차 방문했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와 체호프의 자택 박물관은 뜻밖의 감동을 안겼다. 톨스토이의 집엔 작가가 잠깐 외출이라도 나간 듯, 4000여 점의 유품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귀족이었던 톨스토이가 밭을 갈 때 입었다는 허름한 농노의 옷, 에디슨이 선물했다는 축음기 등 물건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깃거리도 무궁무진했다. 체호프 박물관에서는 방 1개당 사진은 두 컷만 찍으라고 단도리하던 깐깐한 안내인 할머니에게 샐쭉했던 일행이 나중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는 반전(?)도 있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전해주려는 그녀의 열정과 작가를 향한 애정, 자부심이 제스처 하나에서도 묻어났기 때문이다.
작가의 집, 박물관 견학은 16세기 상류층들의 유럽 일주 여정에도 껴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작가의 집을 찾는가’란 질문을 품고 미국 작가들의 집을 순례한 앤 트루벡 미 오벌린대 교수는 그 이유를 “작가가 창조한 세계와 ‘아!’하는 날카롭고도 생산적인 깨달음의 순간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불가능한 욕망 때문”이라고 풀어냈다. 하지만 그 세속의 공간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건 각자 상상력의 몫이라는 결론과 함께.
우리 주변에도 쉽게 가 볼 수 있는 ‘작가의 집’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한국문학관협회에 등록된 문학관만 전국 65곳. 협회에 따르면 내년까지 7~8곳이 더 들어선다고 한다. 올해 각각 작고 20주기, 25주기를 맞은 김남주, 기형도 시인의 문학관 설립 소식도 들린다. 작가가 떠난 빈 의자, 손길을 거둔 지 오래인 원고만 남았을지라도 혹시 모를 일이다. 작가를 조종한 영감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 또 다른 내밀한 이야기를 갖게 될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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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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