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비가역/조용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비가역/조용미

입력 2020-07-23 18:06
수정 2020-07-24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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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역/조용미

창밖으로 자동차 소음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낯선 곳에서 나는 당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잘 읽히지 않는 이 책의 한 페이지에서 여러 번 책장을 덮었다 다시 펼칠 때 나는 당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들길을 걷다 노랑꽃창포와 골풀이 피어 있는 습지를 만나고 거기서 고라니가 뛰어나오는데 당신을 떠올릴 겨를이 없다

어떤 깊고 얕은 풍경 앞에서도 나는 당신을 떠올리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온전히 다 나의 것이었다니

이제 나는 당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을 생각하지 않으니 당신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한가함이 더해진다

당신을 생각하지 않자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당신을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일과는 또 다른 새로움이 생겨난다

역이름이 좋았다. 슬픈 노래의 역. 이 역에서 내려 한 시간만 슬픈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는 역. 이런 역이 세상 어디엔가 있다면 인류의 99%가 찾아올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먹었던 사탕 이름이 비가였던 것도 기억난다. 비가를 먹는 동안은 현실과 동화가 구분되지 않았다. 비가역이 어디 있을까, 찾다가 세상에 없는 역임을 알았다. 이전 상태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열역학의 역. 한없이 슬프나 더없이 자유로운 인간의 역.

곽재구 시인
2020-07-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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