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는 건/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문화마당]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는 건/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입력 2020-02-05 17:08
수정 2020-02-06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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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상 피아니스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진상 피아니스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잉크를 머금은 깃털이 날아오른다.
내가 꿈꾸는 자리에, 흐느끼는 자리에
깃털아 내 대신 눈물을 흘려다오.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깃털이 노래의 날갯짓을 한다.
근심 걱정을 날려보낼 수 있도록
눈물아 말라버리지 말아다오.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건반에 손가락이 그림을 그린다.
열 개의 붓이 모자랄 정도로
노래야 흑백의 오선지에 색깔을 입혀다오.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손가락으로 말을 한다.
단호한 스타카토와 숨결 가득한 레가토로
소리야 확고함과 유연함을 표현해다오.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한데 묶어 함께하도록
친구야 관용의 울타리를 만들어다오.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천지의 진동에게 부탁한다.
그의 귀에 속삭일 수 있도록

바람아 한 움큼만 빌려와다오.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모래위에 내 이름 석 자를 적는다.
물에 잠겨 이내 휩쓸려 가더라도
파도야 자연의 섭리에 나를 데려가다오.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위대한 어머니에게 입맞추고
순결한 아이를 보듬어 줄 수 있도록
그대 사랑의 힘을 나에게 실어주오.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침을 뱉고 뺨을 때리는 사람을
토닥여 주고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아버지여, 강인함과 따뜻함을 제게 주소서.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손발에 못질을 당하면서도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신이시여, 용기와 관대함을 제게 주소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점인 세포들이 모여 사람이라는 위대한 창조물을 이루었지만, 자연이나 우주 앞에 우리는 점으로 표현될 수 없을 만큼 작다. 우리는 우리보다 상위 단위인 자연과 신에게 점과 선을 빌려왔을 뿐이다.

점이 커지면 부담스럽다. 점은 간결하고 깔끔하게 작은 것이 좋다. 극도로 큰 별이 팽창하면 결국 터지면서 주위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버리듯이.

대신 선을 곱게 가꾸자. 양자역학의 전자단위나, 우주의 별들은 각자 그들의 궤도에서 선을 행하고 있다. 선은 움직여야만 그어진다. 행동해야 선이 이루어진다. 대단한 전투력이나 영웅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은 점들이 모여서 큰 선을 이룰 것이다.

작은 고갯짓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나의 시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 작은 미소를 지어 보자. 그들도 함께 웃을 것이다. 작은 춤사위로 즐거워보자.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작은 움직임이 모여 세상이 바뀌기를 소원한다.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는 말이 오늘 더 실감이 난다. 선 하나로도 선과 악을 드나들 수 있으니,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잉크를 머금은 깃털을 어디에 찍을지 신중해진다.
2020-02-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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