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권위적’인 것이 오랫동안 우리 정치를 흐려 왔다. 이것은 막말과 몰염치와 거짓들에 기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치하고 조잡하고 자극적인 언어들로 포장된 이것의 구호는 일부의 생존 방식이고 전략이기도 했다. 국가와 사회적으로는 지탄의 대상이었지만, 문을 닫은 내부에선 지지의 힘이 되기도 했다. 정치를 퇴행시키고 정치 혐오를 낳게 했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심은 단호했다. 그동안 국회의원으로서 위신을 떨어뜨리고 품위를 손상시킨 이들에게 더이상 기회를 주지 않았다. 국회 윤리위원회가 뭉개고 미적거리자 직접 나선 것이다. 이전의 낡은 방식과 틀에 따른 정치에서 벗어나라는 요구였다.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세계를 직시하고, 큰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를 통찰하며, 더 투명하고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정치를 하라는 명령이었다.
정치의 언어가 새로워져야 한다. 이것은 태도와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전의 권위적 언어들을 버려 나가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 문법과 용어를 만들어 가야 한다. 과거의 문법은 소통을 막고 신뢰를 무너뜨린다. ‘좌파’니 ‘우파’니 ‘종북’이니 하며 도발하는 언어여서는 곤란하다. 대통령 선거에 나갈 만한 인물을 ‘잠룡’으로 부르는 것은 권위적 틀로 대상을 바라보게 하는 일이다. ‘대권’ 또한 마찬가지다. 이 말들은 이전 시기 ‘왕’에 빗대 나온 것이다. 우리는 ‘용’이 통치하는 시대에 살지 않고 있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 주권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을 유통시키는 것은 낡은 물건을 파는 행위와 같다. 대구와 경북을 뜻하는 ‘TK’, 부산과 경남을 가리키는 ‘PK’는 지역을 있는 그대로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다. 정치적인 용어다. 다른 지역은 이런 방식으로 지칭하지 않는다. 다른 지역과 달리 보게 한다.
정치의 언어는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꿈꾸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나아간다. 현실과 세계와 민심을 성찰하고 반영한 언어여야 한다. 지금 살아 있는 언어를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 혁명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이것도 정치가 이뤄야 하는 중요한 과제다.
2020-04-2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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