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선수가 심판까지 맡을 때/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열린세상]선수가 심판까지 맡을 때/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입력 2010-10-07 00:00
업데이트 2010-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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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경기할 때에는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규칙을 지키는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은 중립성과 객관성 있게 판단해야 합니다. 심판은 중립과 객관성을 의심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맡을 수 없는 게 원칙입니다. 그 심판을 선수 가운데 하나가 맡으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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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변리사·대한변리사회 부회장
고영회 변리사·대한변리사회 부회장
일반법률관계에 관한 분쟁이 생기면 심판은 대개 법원이 맡습니다. 이런 분쟁이 생길 때 법원에서 해결하는 것은, 전관예우와 같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법원이 일반적으로 중립 자리에서 판단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건에 따라서는 배당 받은 판사가 당사자의 이해에 관련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심판을 맡으면 공정성에 의심을 받기 때문에 민사소송법에는 판사가 그런 재판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판사 스스로 맡지 않도록 하고, 그래도 간여한다면 당사자가 판사를 거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흔히 일어나는 사건에서는 제척, 회피, 기피함으로써 이해 충돌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분쟁내용이 변호사와 관련된 사항일 때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판사도 언젠가는 변호사로 활동하리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사건에서는 이해관계가 걸립니다. 변호사와 관련된 다툼도 법원으로 가야 하고, 법원에는 판사가 버티고 있습니다. 물론 헌법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례를 봐온 국민은 변호사와 다툼을 벌일 때 공정하게 처리될지 참 불안합니다.

변호사법에는 모든 법률사무는 변호사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어길 때는 7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원 이하의 벌금도 같이 때릴 수 있을 정도로 무겁습니다. 사회에는 각 분야에 다양한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 전문가에게는 전문분야의 법률이 있고, 그 전문가가 자기 분야의 법률에 대해서 자문하거나 ‘법률’이란 단어만 써도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부당해 보이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나선다고 생각해 보죠. 개정 법안을 내야 하는데, 정부가 주도하여 법안을 내려 하면 법무부가 문을 지키고 있어 부처 협의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가까스로 법무부를 지나가도 마지막에는 법제처가 지키고 있습니다. 의원입법으로 법안을 내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사 출신 의원이 한 명도 없는 상임위원회는 없겠죠. 국회 회의속기록을 보면 말을 시작 할 때에는 ‘존경하는 어느 의원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의원끼리 서로 많이 존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의원이 찬성해도 존경하는 의원님 한두 분만 적극 반대해도 상임위를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어렵사리 상임위를 통과해도 다음 관문은 법사위입니다. 법령의 체계와 자구를 심사한다는 빌미로 모든 법령은 법사위를 거쳐야 합니다. 법사위의 구성원은 변호사 출신이 가장 많습니다. 변호사 영역을 건드리는 법이 법사위를 무사히 통과하기 어렵다는 것은 경험해 본 사람은 압니다.

변호사 영역과 관련되는 법안, 분쟁, 권한 다툼에서는 정부의 해당 부서, 법원, 국회 등은 이해관계자입니다. 이해관계자가 정책을 결정하고, 재판에 참여하고, 법안을 심사하는 것은 이른바 선수가 심판을 같이 맡는 모습이어서 모양새가 이상합니다. 이때 심판이 정말 공정하게 처리해 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이해관계가 있거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심판하도록 내버려 둘 일이 아닙니다. 일반 사건에서 같이 선수이면서 심판인 사람이 심판하는 자리에 있다면 곤란합니다.

변리사법에는 처음부터 특허에 관한 소송대리권이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법원이 실무상 인정하지 않고 있어 이를 법원과 다투고 있습니다. 세무사·법무사는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소송대리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서 정부·법원·국회는 선수이자 심판입니다. 선수이면서 심판을 맡을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정의의 수준을 나타내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2010-10-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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