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北 붕괴시 경제 유인책으로 중국 무마”

“한·미, 北 붕괴시 경제 유인책으로 중국 무마”

입력 2010-11-30 00:00
수정 2010-11-3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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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美외교전문 25만건 공개 파장

길이가 손가락 마디 하나만 한 이동식 저장장치(USB)에 담긴 1.6기가바이트짜리 텍스트파일 문서들이 하루아침에 전세계 외교가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28일(현지시간) 지난 3년 동안 미국 국무부가 전세계 270개 해외공관과 주고받은 외교전문 25만 1287건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로부터 자료를 미리 넘겨받은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영국 일간 가디언, 독일 시간주간 슈피겔 등은 각자 전문가들까지 동원해 몇 개월에 걸쳐 문서들을 분석한 뒤 이날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위키리크스를 강력히 비난하면서도 폭로 내용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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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서 25만여건 가운데에는 북한이 이란에 미사일 기술을 수출했던 내용을 비롯해 한국과 미국이 북한 정권 붕괴를 가정한 향후 대응책을 논의한 내용 등 민감한 사안들이 대량으로 담겨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위키리크스 문서 가운데 한반도와 관련된 내용은 서울주재 대사관에서 보내진 123건을 포함해 모두 5400여건에 이른다. 가디언은 더 상세한 북한 관련 내용을 29일(현지시간) 추가 보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폭로 문건 가운데에는 한·미 당국자들이 지난 3년 동안 북한이 경제나 권력승계 문제 등으로 붕괴할 경우를 상정한 협의를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주한 미국대사관은 지난 2월 미 정부에 보낸 문건에서 ‘통일한국’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가 중국에 ‘경제적 유인책’(commercial inducements)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이 문건에서 한국 관리들이 미국과 우호적 동맹관계가 예상되는 통일한국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런 방안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문건에 따르면 중국은 오랫동안 북한이 붕괴할 경우 수백만명에 이르는 북한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올 것과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을 우려해 왔지만 한국 정부는 ‘경제적 유인책’ 제안이 그런 염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적 유인책의 구체적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거래와 관련한 내용도 눈길을 끈다. 미 국무부는 지난 2007년 중국 주재 미국 대사관에 전달한 기밀 외교전문에서 베이징을 경유해 이란으로 갈 예정인 북한 미사일 부품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며 중국 정부에 이를 차단해 줄 것을 촉구하라고 지시했다. 북한 미사일 부품을 실은 항공기가 베이징 공항을 떠나 이란으로 향하는 예정 시각은 미 국무부가 전문을 보낸 11월 3일 바로 다음 날이어서 당시 미국이 얼마나 긴박하게 움직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외교전문에는 ‘긴급조치 요구’라는 별도 지시사항이 담겨 있으며,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 명의로 이란이 핵폭탄을 제조하는 데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미사일 부품 이전을 막아 달라는 요청을 담고 있다.

이 전문에 따르면 그해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이 문제를 직접 논의했다. 그러나 이 외교전문에 대해 당시 중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알려 주는 문서는 이번 위키리크스 폭로 문건에 들어 있지 않았다.

미국 외교관들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무기력한 늙은이’로 비하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몇 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육체적·심리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며 이같이 평가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2차 핵 실험에 따른 유엔의 제재를 앞둔 지난해 7월 31일 세계 각국에 주재하고 있는 자국 외교관들에게 외교전문을 보내 북한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특히 유엔개발계획(UNDP) 관계자들과 북한 외교관들에 대한 상세한 인적 정보도 수집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2010-11-3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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