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불대사관 유복렬참사관, 20년 끌어온 협상 타결 1등공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297권 가운데 1차분 80여권이 145년간의 유랑생활을 끝내고 14일 아시아나항공편으로 귀국한다.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은 1991년 이후 20년 가까이 진행된 협상에서 양국 간 첨예한 입장 차이로 타결점을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도서들이 고국 땅을 밟게 한 숨은 주역이 과연 누구일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프랑스 외교부와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서는 외규장각 도서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 실무협상을 진행한 유복렬 정무참사관의 공이라는 데 아무런 이견을 달지 않는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는 그동안 협상 때마다 고비를 넘기지 못한 채 교착상태를 거듭하다 최근 몇 년 간은 아예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아 영구 미제에 빠질 뻔한 위험에 놓였던 사안이었다.
프랑스 근무가 두번째인 유 참사관은 외교통상부 본부에서도 프랑스담당관으로 일해 이 사안을 훤히 꿰뚫고 있던 거의 유일한 외교관이었는데, 2009년 12월 부임한 박흥신 주불대사가 이 문제를 최우선순위로 추진하면서 협상은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때마침 지난해 우리나라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의장국을 수임하고 바로 뒤이어 프랑스가 의장국을 맡게 되는 중요한 외교적 협력관계의 한복판에 놓인 것도 유 참사관이 능력을 발휘할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셈이 됐다.
양국 정부의 결정에 따라 유 참사관은 박 대사와 함께 프랑스 외교부의 폴 장-오르티즈 아태국장 및 프레데릭 라플랑슈 동북아과장을 상대로 ‘멀고도 험한’ 실무협상에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유 참사관의 ‘파트너’인 라플랑슈 과장은 프랑스 담당관 때 함께 일한 적이 있어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던 터였다.
양국 협상팀은 공식 협상과 비공식 협상 등 2개 채널로 필요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수시로 협상하고 입장을 조율하며 서로의 논리를 펴나갔는데, 구체적인 실무협상은 물론 대부분 유 참사관과 라플랑슈 과장의 몫이었다.
유 참사관은 라플랑슈 과장과 하루에도 몇차례씩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허심탄회하면서도 주도면밀하게 해결책을 마련해나갔다.
협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1993년 한불 정상 간에 합의된 ‘등가등량의 상호교류와 대여’ 원칙을 깨는 작업이었으나 ‘한국으로부터 책 몇 권을 받는 것보다 한국민의 영원한 감사의 뜻을 받으라’는 설득으로 관철시켰다.
하지만 문화재 유출을 할 수 없는 프랑스 국내법상 ‘반환이 아닌 대여’로 우회해야 하는 문제는 국내의 반발이 심해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만 4개월이 걸렸다.
유 참사관은 “당시 라플랑슈 과장이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와 진전 여부를 물어왔는데 서울 G20 정상회의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우리의 입장이 정해지지 못해 피를 말릴 지경이었다”며 “그 뒤 ‘5년 단위 갱신 대여’ 방안도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의 거센 반대로 사르코지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고 소개했다.
양국 정상의 합의 후 정부 간 합의문 작성과 소장기관 간 약정 체결 협상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만만찮은 문제였지만 세부사항에서도 밀고당기기를 거듭한 끝에 무난히 타결돼 14일 1차분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유 참사관은 “지난 1년간 피땀어린 노력과 우여곡절 끝에 온 국민이 염원해온 외규장각 도서가 한국땅을 밟게 된데 말할 수 없는 감회를 느낀다.”며 “아쉬운 점은 있지만 불가항력적인 프랑스 내 여건을 감안할 때 이번 해결방안이 현실적인 최선책이라고 생각하며 한국과의 각별한 우의를 고려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프랑스 정부에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를 거쳐 프랑스로 유학해 불문학 석·박사를 취득해 97년 외교부에 들어온 유 참사관은 프랑스 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완벽한 불어를 구사하고 프랑스 문화와 역사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으며, 프랑스 인사들 사이에서 “유복렬 없는 주불대사관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실력파 외교관으로 통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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