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물가 상승에 급진세력 타격
중남미 지역에서 위세를 떨쳐 온 ‘차베스 주의’가 빠르게 힘을 잃고 있다. 브라질식 중도 실용주의가 세를 넓혀 가면서 급진 좌파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브라질 일간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는 17일(현지시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강경좌파 세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자원 산업 등 주요 산업의 전면적인 국유화를 강행하는 한편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 왔다. 그러다 석유자원을 앞세운 베네수엘라 등 이들 국가의 경제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성장 정체와 물가 앙등이라는 위기를 겪으면서 차베스 주의와 남미 급진 좌파세력이 타격을 받고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에서 지우마 호세프 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브라질 중도좌파가 택한 시장친화 노선이 중남미 지역에서 갈수록 입지를 넓히고 있다. 김기현 선문대 교수는 “브라질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중남미에서 ‘중도 실용주의’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차베스의 영향력과 이들이 주장해 온 ‘21세기형 사회주의 국가’는 대조적으로 빛이 바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페루 대선에서 ‘룰라식 모델’ 선택을 강조하는 중도 좌파 성향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와 유일한 우파 후보인 게이코 후지모리가 득표율 1, 2위로 나란히 결선투표에 진출한 것도 중도 실용주의 승리로 해석되고 있다. 우말라 후보는 지난 2006년 대선에서는 ‘차베스주의자’를 자처하며 출마한 알란 가르시아 현 대통령에게 패배했었다.
우말라 후보는 2002년 브라질 대선 때 룰라가 했던 것처럼 “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제정책에 급격한 변화는 없다.”며 시장을 안심시키면서 “희망이 두려움을 이긴다.”는 룰라의 슬로건까지 내걸었다.
이에 앞서 지난 2009년 우루과이 대선에서도 좌익 게릴라 출신의 호세 무히카 후보가 “룰라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말로 자신을 둘러싼 과격 이미지를 털어내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역시 좌파 성향인 마우리시오 푸네스 엘살바도르 대통령도 2009년 집권 이래 이념을 배제한 실용적 중도좌파 노선을 추구한 룰라 전 대통령의 길을 따르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열렬한 ‘차베스주의자’였던 모랄레스 대통령과 코레아 대통령조차 최근 들어 차베스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급진 좌파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2011-04-19 1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