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살해’ 논란에 美 사회 시끌
‘진범 논란’ 속에 사형 집행이 세 차례나 미뤄졌던 미국인 트로이 데이비스(42)가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흑인인 그가 백인 경관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지 22년 만이다. 그러나 데이비스의 무죄를 믿는 지지자들이 즉각 반발해 미국 사회에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미국 조지아 주 정부는 21일(현지시간) 늦은 밤 데이비스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교도소 측은 그가 안정제를 맞고 의식을 잃자 곧바로 독극물을 주사했으며, 이후 5분 만에 데이비스는 숨졌다. 그는 형 집행 전 최후 진술에서 “나는 무죄이고 권총도 갖고 있지 않았다.”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데이비스는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하루’ 동안에도 반전에 반전을 겪은 끝에 숨을 거뒀다. 연방 대법원과 미국 조지아주 사면·가석방 위원회가 지난 20일 데이비스에 대한 사면 청원을 최종 기각하면서 이날 오후 7시 잭슨 지역의 주 교도소에서 사형 집행이 예정됐다.
그러나 대법원이 21일 변호인 측과 주 정부의 논쟁을 검토하기 위해 사형 집행을 미루기로 하면서 데이비스는 또 한 차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시간의 논의 끝에 형 집행 정지 요청을 기각했고 교도소 측은 즉각 그를 사형시켰다. 형 집행 직전까지 사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백악관 측은 “개별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데이비스의 사형 집행 논란을 중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발을 뺐다.
데이비스는 1989년 경찰관 마크 맥파일을 권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991년 사형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당시 총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를 진범으로 꼽은 목격자 9명을 앞세워 현장 근처를 서성이던 데이비스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증인 가운데 7명이 “경찰의 강압적 태도에 못 이겨 그를 범인으로 단정했다.”며 진술을 번복, 나라 안팎의 논란거리가 됐다.
조지아 주 출신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전직 FBI 국장, 미국 흑인 민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등은 물론 교황 베네딕토 16세까지 데이비스의 구명 운동에 나서면서 2007년 이후 형 집행이 세 차례나 연기됐다.
사형이 집행되자 그의 지지자들은 곳곳에 모여 그를 애도했다. 형장 밖에는 700여명의 시민이 밤새 사형 집행을 규탄했다.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도 150여명이 모여 그의 사진이 붙은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운동가 니콜라스 크라메에르는 “누구든 사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형 결정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앰네스티 측은 조지아 주 사면·가석방 위원회 측이 데이비스의 사면 청원을 기각한 데 대해 “오심”이라고 비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2011-09-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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