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유 속에 떠난 베를루스코니 퇴임 후도 험난

야유 속에 떠난 베를루스코니 퇴임 후도 험난

입력 2011-11-13 00:00
수정 2011-11-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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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임 중 숱한 성추문과 부패 의혹,말실수 등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여론과 시장의 압력에 밀려 17년 정치인생을 마치고 12일 권좌를 떠났다.

 그러나 17년 정치 경력 중 10년 동안 총리직을 지낸 베를루스코니에게는 성매매 재판 등 적잖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어 사임 후의 미래도 파란만장할 전망이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공개 의향서를 통해 약속한 경제안정화 및 개혁 방안이 하원을 통과한 직후 그동안 함께 정부를 이끌었던 각료들과 마지막 내각회의를 가진 뒤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을 만나 ‘사표’를 냈다.

 베를루스코니의 공식 사임 소식이 알려지자 로마 도심 총리 집무실과 하원 의사당 앞 광장에 모여있던 수천명의 군중은 일제히 환호했다.

 일부 군중은 나폴리타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기 위해 총리 관저를 떠나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에게 ‘어릿광대’라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2008년 세 번째로 총리직에 복귀한 이후에만 51번의 신임투표에서 살아남았던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결국 이탈리아 경제를 뿌리째 흔드는 시장의 공세와 압력은 견뎌내지 못했다.

 1936년 9월 29일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건설업으로 돈을 모은 뒤 복합 언론기업 메디아셋을 설립해 언론재벌이 된 베를루스코니는 ‘매력적인 억만장자’ 이미지를 앞세워 1994년 ‘포르자 이탈리아’라는 정당을 이끌고 혜성처럼 정계에 등장해 곧바로 총리가 됐다.

 북부연맹의 연정 탈퇴로 첫 임기 시작 후 몇 달 만에 사임해야 했던 그는 2001년 5월 치러진 총선에서 총리직에 복귀했다.

 또 그는 2006년 로마노 프로디 전 총리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가 2년 후 프로디 정부가 붕괴하자 현 집권당인 자유국민당(PdL)을 결성해 세 번째 총리직을 맡았다.

 재임 기간 성추문과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베를루스코니는 ‘스캔들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고,부인으로부터 이혼도 당했다.저택에서 종종 심야 비밀파티를 벌여 ‘붕가붕가 파티’라는 속어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외교 무대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들을 비하하는 언행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다.

 성 문제와 마초적 언행에 비교적 관대한 이탈리아 문화 덕택에 베를루스코니는 잦은 스캔들에도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의 불길이 이오니아해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로 번지고 국채 이자율이 위험 수위로 급등하면서 베를루스코니의 정치적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야권은 연일 베를루스코니의 사임을 요구했고,높은 실업률과 장기화된 경기침체에 분노한 국민들은 지난달 로마시내에서 건물과 차량에 불을 지르는 폭력시위를 벌였다.

 지지율 추락과 일부 연정세력 이탈,핵심 동맹세력인 북부연맹의 외면,집권당 의원의 탈당 등으로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8일 치러진 2010년 예산 지출 승인안에 대한 투표에서 집권연정의 다수의석 붕괴가 확인됨에 따라 사의를 밝혔다.

 총리직을 떠난 75살의 베를루스코니의 앞길은 험난하다.우선 지루한 법정투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모로코 출신 나이트클럽 댄서 카라마 엘 마루그(일명 루비)와의 미성년 성매매 및 권력 남용,소유기업의 조세포탈,법정 위증교사 및 뇌물공여 등 3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미성년 성매매와 권력 남용은 유죄 판결시 최대 12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베를루스코니가 그의 전임자이자 정치적 후원자였던 베티노 크락시 전 총리처럼 해외망명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이탈리아 사회당을 몰락으로 이끈 크락시 전 총리는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자 1994년 튀니지로 망명했고 궐석재판에서 27년 형을 선고받았다.

 베를루스코니는 검찰이 입수한 통화녹취에서 이탈리아를 ‘형편없는 나라’라고 지칭하면서 “나는 몇 달 안에 떠날 것”이라고 말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그가 해외도피를 선택할 경우 카리브해의 섬 안티구아가 유력하다고 이탈리아 정치 분석가들은 예상했다.안티구아는 이탈리아와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고 있지 않고 베를루스코니가 호화 별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치무대의 중심에 서는 것을 좋아했던 베를루스코니의 기질로 미뤄볼 때 카리브해의 고독한 섬에서 여생을 보내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정치 분석가 세르지오 리초는 AFP에 “베를루스코니가 안티구아에서 체스나 두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베를루스코니는 공식적인 삶을 떠나 살 수 없으며,관심의 초점에 있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차기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집권 자유국민당에서 고문 역할을 맡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과거 두 차례 실각 이후에도 불사조처럼 살아났던 전례를 비춰볼 때 여론이 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계에 돌아올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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