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대선 불복 시위의 중심이 된 여성, 불과 세달 전엔 …

벨라루스 대선 불복 시위의 중심이 된 여성, 불과 세달 전엔 …

이기철 기자
이기철 기자
입력 2020-08-24 14:33
수정 2020-08-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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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대선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가 연설하는 모습. AP 자료 사진
벨라루스 대선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가 연설하는 모습. AP 자료 사진
“이번 대선을 앞두고 구속되는 바람에 출마할 수 없었던 남편을 대신에 이 자리에 섰다. 벨라루스 국민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런 정치 체계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실시된 벨라루스 대선 이후 2주 넘게 계속되는 대선 불복 시위의 중심엔 30대 여성이 있다. 대선 후보였던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7)로, 평화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 세르게이 티하놉스키(42)가 사회질서 교란 혐의로 지난 5월 29일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두 자녀를 둔 평범한 영어 교사였다. 그러나 남편 구속 이후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되면서 삶이 정치인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야당 파벌들을 통합하고, 지지자들을 급히 묶어 선거 캠프를 차리면서 정치적 역량을 보여줬다.

“후보가 되었을 때 ‘너는 감옥에 가고, 아이들은 고아원에 갈 거야’라는 한 통의 협박 전화에 마음이 흔들려 후보를 사퇴할까 했다. 그러나 변화의 상징, 자유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는 선택을 내렸다.”

개표 결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5) 대통령이 80.2%에 이르는 압도적 득표율로 승리한 것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당국이 발표한 티하놉스카야의 득표율은 9.9%이지만 돌풍을 일으킨 그녀는 자신이 60~70%를 득표로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은 나를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평범함 사람으로 본다. 그래서 나를 좋아한다.”

개표 다음날부터 전국적으로 대규모 부정 투표가 있었다며 수도 민스크, 북동부 비텝스크, 서부동시 그로드노 등 주요 도시에 대선 결과 불복 시위가 발생하면서 루카셴코에 맞서는 ‘투사’가 되었다. 그녀의 메시지에 국민들은 열광한다 “나는 참는데 지쳤고, 침묵을 지키는데도 지쳤다. 이젠 두려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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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첫 시위 발생 다음날 티하놉스카야는 두 자녀와 함께 안전을 이유로 벨라루스를 빠져나와 리투아니아에 머물고 있다. 사실상 망명지인 이곳에서 그녀는 거의 매일 평화 시위와 파업을 촉구하는 비디오 메시지를 내고 있다. 그녀는 23일 미국 언론 중 처음 인터뷰한 ABC 방송에 “벨라루스 국민은 표현의 권리, 시위의 권리, 선택의 권리, 원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권리를 가진 국가에서 살고 싶어 한다”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민주국가들로부터의 도덕적 지원을 호소했다. 벨라루스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를 방문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도 그녀를 면담할 예정이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이웃 나라”라며 적대시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줬다.

국제 사회에 자신이 승자라고 인정해 줄 것을 호소하는 그녀는 정권인수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 20일 그녀가 머무는 리투아니아의 사울리우스 스크베르넬리스 총리가 티하놉스카야를 집무실로 초청했고, 공개적으로 “벨라루스 국가 지도자”라고 불렀다.

그녀는 경찰의 폭력적 진압을 비난했다. “우리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경찰은 평화 시위자들을 마구 때리고 폭력을 행사한다. 벨라루스 경찰이 벨라루스 국민을 이처럼 잔혹하게 폭행할 수는 없다.”

티하놉스카야는 루카셴코는 국민의 뜻에 고개를 숙이고, 국민 모두를 위해 물러날 것을 확신한다며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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