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전 동성애 혐오 범죄로 스러진 동생의 억울함 풀릴까

32년 전 동성애 혐오 범죄로 스러진 동생의 억울함 풀릴까

임병선 기자
입력 2020-05-12 15:34
수정 2020-05-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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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경찰, 미국 대학원생 존슨 살해 용의자 체포

1988년 호주로 여행 갔다가 동성애자 협오 범죄에 스러진 미국 대학원생 스콧 존슨. 횡액을 당했을 때 스물일곱 꽃다운 청춘이었고, 박사 학위를 따기 직전이었다. 스티브 존슨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1988년 호주로 여행 갔다가 동성애자 협오 범죄에 스러진 미국 대학원생 스콧 존슨. 횡액을 당했을 때 스물일곱 꽃다운 청춘이었고, 박사 학위를 따기 직전이었다.
스티브 존슨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32년 전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이의 손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억울함이 풀릴까?

미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수료하기 직전이었던 스콧 존슨은 1988년 파트너와 함께 호주로 여행 왔다가 시드니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주검으로 발견됐다.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였다. 경찰은 성적 정체성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수사를 끝내버렸다.

그런데 호주 뉴사우스 웨일즈(NSW) 경찰은 얼마 전에야 1980년대 시드니 일대에서 동성애 혐오 범죄가 잇따라 발생한 사실에 주목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형 스티브가 수십년 동안 꾸준히 재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는 2018년 BBC 인터뷰를 통해 동생이 절벽에서 뛰어내릴 이유를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 부검의 수사가 진행됐고 모두 경찰이 수사를 다시 해볼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실제로 경찰이 행동에 나서진 않았고 2017년에야 부검의가 스콧이 동성애 혐오 범죄로 희생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야 수사가 재개됐다. 경찰은 이듬해 당시 범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100만 호주달러(약 8억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는데 유족이 지난해 이를 곱절로 늘렸다.

그런 정성이 통했을까? 경찰은 12일 아침 일찍 시드니 북쪽 근교의 한 주택에서 49세 남성을 존슨의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체포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경찰은 용의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날 법원에 출두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 뉴사우스 웨일즈(NSW)주 경찰이 12일 시드니 외곽 레인 코브에서 스콧 존슨 살해 용의자로 49세 남성을 체포해 연행하고 있다. 호주 NSW 경찰 동영상 캡처 EPA 연합뉴스
호주 뉴사우스 웨일즈(NSW)주 경찰이 12일 시드니 외곽 레인 코브에서 스콧 존슨 살해 용의자로 49세 남성을 체포해 연행하고 있다.
호주 NSW 경찰 동영상 캡처 EPA 연합뉴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동생의 한을 풀겠다며 수십년 동안 재수사를 위해 싸워온 스티브 존슨. 호주 NSW 경찰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동생의 한을 풀겠다며 수십년 동안 재수사를 위해 싸워온 스티브 존슨.
호주 NSW 경찰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믹 풀러 경찰서장은 형 스티브에게 용의자를 체포한 사실을 알리면서 “경찰 경력에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1980년대 존슨의 죽음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해 동성애 커뮤니티를 보호하지 못한 잘못과 책임이 있다며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유족들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오늘 용의자를 체포하는 일 같은 건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스티브는 영상 통화를 통해 “감명 깊은 날”이라며 “동생은 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했으며 내가 이 일을 해내길 간절히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말 시드니 일대에서 동성애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갱단이 살해한 동성애자 남성만 80명에 이르렀는데 대부분은 절벽에서 밀어버렸다. 스티브는 동생의 살해 용의자가 체포된 것이 다른 이의 죽음에도 정의의 심판이 내려지는 길을 열어제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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