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오른쪽부터) 터키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앙카라궁 관저에서 유럽연합(EU)과 정상회담을 열기 전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과만 상석에 나란히 앉자 당황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가만 서 있다. 결국 의자가 없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소파에 앉아 의전 격이 맞지 않는 터키 외무장관과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동영상 캡처 AFP 연합뉴스
동영상 캡처 AFP 연합뉴스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앙카라에서 유럽연합(EU)-터키 정상회담을 앞두고 터키 측이 자리 배치 의전을 한 것이 논란을 낳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틀 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독재자라고까지 표현하며 비판했을까?
공개된 당시 동영상을 보면 에르도안 대통령과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이 나란히 상석에 앉은 상태에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자신이 앉을 의자가 보이지 않자 당황해 가만 서 있는 모습이 나온다. 미셸 의장도 잠시 다시 일어서려다 멈칫하는 등 신경을 쓰는데 에르도안 대통령은 일부러 못 본 척하며 마스크를 벗는 것처럼 보인다. EU 의전에 따르면 집행위원장과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같은 대우를 받는 게 원칙이다.
어쩔 수 없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상석 옆에 놓인 소파에 앉아 의전 서열 상 아래인 터키 외무장관과 마주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여성 인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EU와 갈등을 빚는 터키 측이 여성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을 의도적으로 모욕한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터키는 지난달 여성에 대한 폭력을 금지한 국제조약인 ‘이스탄불 협약’에서 탈퇴하며 EU 등으로부터 여성 인권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터키 외무부는 EU 측 요구와 제안에 따라 EU 집행위원장을 영접했다며 안팎에서 제기된 비판을 반박했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8일 키지궁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관련된 질의를 받고 “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에 대한 에르도안의 행동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적절한 행동이며, 폰데어라이엔이 겪은 수모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에르도안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이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