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트럭 분량의 한지를 하룻밤 새 모두 써버린 그는 ‘아티스트’다
“밤에 한지 한 트럭을 배달해 두면 하룻밤 새 다 써버렸답니다. 단순히 기이한 게 아니라 그처럼 극한적인 몰입과 수련 끝에 저런 작품들이 나왔다고 봐야하는 겁니다. 그런데 2002년 타계 뒤 너무 빨리 잊혀진 감이 있습니다.”(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 큐레이터)스님 중광(重光·1935~2002). 아니 걸레스님 하면 퍼뜩 떠오를지 모르겠다. 수십년은 더 된, 비루하게 누빈 옷을 걸치고 다니면서 입만 열면 남녀 성기를 뜻하는 ‘X’, ‘X’ 같은 육두문자를 수시로 내뱉었던 기이한 인물.
그래서 1977년부터 영국, 미국 등에서 전시회를 열기 시작했으나 정작 한국에서는 예술가로서 조명된 적은 없는 인물. 이 인물을 재조명해보자는 취지의 전시가 8월 2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만행’(卍行)이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왼쪽부터 달마, 달마, 무구(無垢). 맨 오른쪽은 퍼포먼스 뒤 먹물을 뒤집어쓴 중광 스님.
“원래 지난해 기획된 전시인데 작품들이 워낙 광범위해서 차라리 한 해 더 늦추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올해 전시에 이르렀다.”는 박물관 측 설명처럼 전시된 작품은 전통적인 묵화에서부터 문학, 조각, 도예, 유화, 영화, 행위예술 등 다양하다.
그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달마와 학을 그린 작품들. 하룻밤 새 트럭 한대 분량의 한지를 다 써버렸다는 사람답게 힘찬 필치로 대상을 압축적으로 잡아낸 솜씨가 보통 아니다. 제주 출신답게 말, 바다, 새 등을 소재로 한 제주 풍경화도 녹록지 않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스스로 세상을 깨끗이 하는 걸레임을 자임했다는 것은 깊은 골짜기에서 수도하는 선이 아니라 산에서 내려온 선을 지향했다는 뜻”이라면서 “달마 작품 가운데 외눈박이가 있는데 이는 속세에서 펼치는 선 수행의 한 방법으로 본인의 예술을 강렬하게 의식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원로 영화감독 김수용 특강 마련도
부대행사도 있다. 8월 6일 오후 2시에는 원로 영화감독 김수용(82)이 ‘나는 왜 허튼 소리를 만들었나’를 주제로 특강을 한다. 김 감독은 1986년 중광의 일대기가 담긴 책 ‘허튼 소리’를 영화로 만들었다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불교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로 10여곳이 잘려 나가자 이에 항의하면서 감독을 그만두기도 했다. 영화는 2002년 부산국제영화제 김수용 회고전에서 완전 무삭제판으로 다시 상영됐고, 이번 전시 기간에도 상영된다. 5000원. (02)580-13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7-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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