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품은 알 당신따라 꿈틀

시간을 품은 알 당신따라 꿈틀

입력 2011-09-17 00:00
수정 2011-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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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 개인전 10월 16일까지

뚱딴지 같은 얘기지만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1980년대 히트쳤던 미국 드라마 ‘브이’(V)가 떠오른다. 세계 각국 주요 도시 상공에 우주선이 진주해 호기심과 외경심을 자아냈던 장면 말이다. 알이 등장하는 방식이 그렇다. 렌티큘러(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보이는 기법)로 제작됐기 때문에 알은 3D처럼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은 물론 관람객의 동선에 따라 살아 움직이듯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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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 작가의 ‘The First Now’
윤영석 작가의 ‘The First Now’




알 주변엔 스팸메일이나 인터넷 문서에서 간혹 보이는 깨진 한글 글씨체가 가득하다. ‘브이’에서 외계인들이 제대로 된 주파수를 찾아내고서야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로 세계 각지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하는 것처럼 이 알들은 적당한 언어를 찾아내 외부와 소통하기 이전의 모습이다. ‘브이’에서는 우주선에 들어앉은 것이 끔찍한 비밀을 품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 알들이 품은 비밀은 무엇일까.

윤영석(55) 경원대 환경조각과 교수의 개인전 ‘타임리스니스’(Timelessness) 전시장은 말 그대로 알들의 천국이다. 렌티큘러로 만든 알, 사진 합성으로 표현한 알, 그리고 수작업으로 손수 빚어낸 알까지 있다. 타원형의 둥그스름하고 귀여운 알들은 제목 그대로 시간을 안에다 품어 시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존재다. 생명은 측정하기 어려운 시간을 품고 있는 존재란 암시다.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는 ‘시간과 생명’. 알이란 비교적 흔한 매체를 택하게 된 것은 아침마다 먹던 계란 프라이 때문이다. 발가스름하게 예쁜 유정란을 보고 시간과 생명이 만난 장소를 떠올렸다. 다양한 알 작품들 사이에는 양뼈와 프로펠러로 만들어진 독수리 발톱, 동물의 턱뼈를 새겨 넣은 알 같은 설치 작품들도 만들어 뒀다. 생명과 시간이 만나는 장소인 알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려는 인간에 대해 얘기하겠다는 뜻이다.

알을 택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2007년 서울 인사동 입구에 큰 붓을 세운 설치 작품 ‘일획을 긋다’의 경험이다. 서울대 조소과, 독일 슈투트가르트대 조각과를 거친 윤 교수의 원래 작업은 개념 미술적인 설치 작업들이었다. “인사동 오가는 사람들에게서 윤영석이가 또 실험 하나 했네라는 말 나올까봐 엄청 고민했어요. 대중적으로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참 기뻤습니다.” 전시는 10월 16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 (02)725-102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9-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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