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는 문을 닫으려 하고, 다리 하나 없는 의자와의 여행

스즈메는 문을 닫으려 하고, 다리 하나 없는 의자와의 여행

임병선 기자
입력 2023-03-07 11:11
업데이트 2023-03-0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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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 거장 신카이 마코토 ‘스즈메의 문단속’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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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박스 제공
쇼박스 제공
그의 작품에는 늘 올라가는 남성과 내려오는 여성이 교차한다. 여성은 하늘과 우주에 머무르며, 남성은 지구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맥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시원한 풍광에 선들이 아래로, 위로 뻗어나간다. 선이 인연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12년 전 동일본 대지진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일본인들의 가슴에 남아있음을 떠올리게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8일 우리 관객을 만난다. ‘초속 5센티미터’(2007)과 ‘별을 쫓는 아이들’(2011)과 ‘언어의 정원’(2013)으로 우리의 감성을 깨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너의 이름은.’(2016)과 ‘날씨의 아이’(2019)에 이어 ‘트리플 천만 관객’을 일본에서 동원한 작품이다. ‘너의 이름은.’은 380만 2000여명을 모아 지난 5일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역대 국내 흥행 일본 애니 1위의 영예를 물려줬는데 이번 작품으로 되갚을지 주목된다.

주인공은 일본 규슈의 한적한 마을에 사는 소녀인데 거리에서 마주친 청년 소타를 찾고자 인근 폐허로 향했다가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수수께끼의 문을 발견한다. 스즈메가 호기심에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마을에 지진과 함께 재난이 닥쳐온다. 보이지 않던 소타가 문을 닫기 위해 분투하고 스즈메가 가세하며 가까스로 열린 문을 닫는다.

소타는 재난을 부르는 문을 닫기 위해 전국을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소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발이 하나 없는, 작은 의자로 변해버린다. 스즈메는 의자가 돼 버린 소타와 함께 재난의 문을 닫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그 여정이 한신고베 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현장으로 연결됨은 물론이다. 미국의 한 연예매체는 일본의 전통 설화를 장황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여행을 하며 스즈메는 어린 시절 재난으로 잃은 엄마를 마주하고, 깊은 상흔처럼 들러붙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극복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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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개봉 당시 포스터.
일본 개봉 당시 포스터.
신카이 감독이 그동안 작품들에서 선보였던 세계관을 집대성한 느낌이 강렬하다. 수채화처럼 투명한 이미지가 눈길을 붙들고 섬세한 언어가 영롱하다.

의자로 변해버린 사람이 신비한 고양이 ‘다이진’을 쫓아 재난을 부르는 문을 닫으러 모험에 나선다는 설정이 색다르다. 판타지 요소가 강한 작품에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릴지 모를 재난에 맞서 싸우며 그래도 희망을 찾아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오롯하다. 선전 포스터에 등장하는 “다녀오겠습니다” 인삿말에 응축돼 있다.

아름다운 색감에 감성을 더하는 건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다.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가창력으로 주목받아 온 도아카는 주제곡 ‘스즈메’를 통해 관객에게 묘한 감성을 일깨운다. 슬프기도, 따뜻하기도, 그립기도 한 그의 OST는 엔딩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관객을 붙잡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음악은 신카이 감독과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에서 호흡을 맞춘 일본 밴드 래드윔프스가 맡았다. 미국과 일본에서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해온 진노우치 가즈마도 참여했다. 그는 ‘명탐정 피카츄’와 ‘쥬만지:넥스트 레벨’ 등에 참여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일본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이 황금곰상을 수상한 뒤 21년 만의 쾌거라고 떠들썩했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대신 199개국에 선판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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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트리플 천만 관객 동원 작품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트리플 천만 관객 동원 작품들.
1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스즈메 역의 성우 하라 나노카가 신카이 감독과 함께 7일 한국을 찾아 9일까지 머무르며 무대 인사 등에 나선다. 신카이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쾌감을 총동원해 여행의 고양감을 그리고, 이야기가 완수해야 할 공감이나 격리의 기능을 플롯 밑바탕에 내던지며 그것들이 잘 구동하길 바라면서 만들었다”면서 그런 작업이 가능한 것은 지금의 나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날씨의 아이’가 개봉했던 2019년의 여름날에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이번 작품의 계기 됐다고 돌아봤다. 장소를 애도하는 이야기와 기묘한 모양을 한 자와 소녀가 여행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허망함과 폐쇄감이 떠오르는 곳에서 시대에 포박당한 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 모두를 그리고 싶었다는 얘기다. 122분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다.
임병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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