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왜 태극기는 가건물 위에서만 펄럭이는가”

김훈 “왜 태극기는 가건물 위에서만 펄럭이는가”

입력 2017-03-07 10:49
수정 2017-03-0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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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애국’ 전개과정과 흡사”…계간 문학동네 기고

“왜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촛불의 대열 앞에서 펄럭이지 못하는가. 광복 칠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왜 태극기는 국민적 보편성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왜 태극기는 여전히 가건물 위에서만 펄럭이는가. 이 질문 속에서 대한민국의 이카로스는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최근 주말마다 서울 도심을 메우는 촛불과 태극기 물결을 관찰한 작가 김훈(69)의 단상이다. 작가는 7일 출간된 계간 문학동네 봄호(통권 90호)에 실은 ‘태극기에 대한 나의 요즘 생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태극기를 흔드는 애국단체들을 보며 “한 시대가 가건물로 붕괴되는 듯싶었다”고 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곳은 작가가 소년 시절 박정희 대통령 행차에 동원돼 만세를 부르던 바로 그 자리다.

작가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의 고귀함이 ‘탄핵 반대’라는 정치 슬로건으로 바뀌어서 정치정서를 집결시키고, 그것이 다시 ‘애국’의 태극기를 펄럭이게 되는 과정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며 “다중의 태극기가 광장에서 펄럭이면, 그 뒤를 대형 성조기가 따라오고, 대형 십자가가 등장하는 패턴은 내 소년 시절의 ‘애국’의 전개과정과 흡사했다”고 썼다.

애국을 외친 이들이 외려 태극기의 보편성을 해친 사실은 한국 현대사의 아이러니다. “식민지에서 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폐허에서 이 애국의 깃발은 기한(飢寒)과 적화(赤化)로부터 살아남으려는 절박한 생존본능으로 펄럭였다. (…) 권력은 애국의 깃발 밑으로 결집되면서 억압을 형성했고 그 대척점에서 또다른 저항적 당파성이 형성되면서 태극기의 보편성은 훼손되어갔다. ‘애국’을 생업으로 하는 세력이 등장해서 일상의 자유를 억압해가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고귀함을 역설했다.”

작가는 국정농단 사태를 두고 “대통령의 정치행태는 고대국가 이사금(尼師今)의 치정통치에 머물러 있었고 이사금과 지근거리에 있는 권신(權臣)들이 거기에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며 “부패와 권력 남용의 뿌리는 심원했고, 범위는 방대했고, 디테일은 주밀했는데, 그 기법은 구전설화적이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는 이번호에 김훈을 비롯해 이영광·이기호·김사과·최현숙 등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다양한 촛불과 태극기의 풍경을 실었다. 권희철 편집위원은 “스스로를 선의 위치에 놓고 상대방을 악이라고 비방하는 일은 다시 한번 사태를 단순화시키며 진실을 향한 의지를 약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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